"도매법인이 농산물값 올린다?"...'유통개혁' 주장 뜯어보니 곳곳에 사실과 다른 셈법
도매법인 영업이익률 23.87%는 '거래금액' 아닌 수수료 매출 기준..."폭리 프레임은 회계 착시" 중도매인 산지 직거래 이미 예외 허용...시장도매인제 20년에도 효과는 엇갈려 "농산물 고물가를 도매법인 탓으로 단순화 안 돼...검증 없는 유통체계 흔들기 경계해야"
[시사매거진 장석 기자]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산지에서는 가격이 떨어졌는데 왜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가. 그리고 그 간극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다.
최근 정치권과 농민·소비자단체가 다시 농산물 유통구조 개편을 요구하면서 이 논쟁이 재점화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10개 농민·소비자단체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업무영역을 구분한 현행 구조가 유통비용을 높이고 가격 왜곡을 낳는다며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도매시장 중심의 경쟁 제한적 구조를 문제의 핵심으로 꼽고, 중도매인의 산지 직거래 확대와 민관 합동 유통개혁특별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했다.
문제는 도매법인을 유통비용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실제 시장의 작동 방식과 제도적 전제가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됐느냐다.
도매법인들은 농산물을 직접 매입해 재판매하는 일반 유통업체와 성격이 다르다. 농가가 출하한 농산물을 위탁받아 경매 등으로 판매하고 대금을 정산하는 역할이 중심이다. 따라서 도매법인의 회계상 매출과 농산물 전체 거래금액을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할 수 없다.
'영업이익률 23.87%'...거래금액 아닌 수수료 수입 기준
이번 기자회견에서 주요 근거로 제시된 것 가운데 하나가 가락시장 도매법인의 높은 영업이익률이다. 가락시장 5개 도매법인의 최근 5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23.87%에 이른다는 수치를 들어 대형마트 등의 영업이익률과 비교하며 과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도매법인의 회계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매법인은 농산물 자체를 매입해 매출로 잡는 일반 소매·유통업체와 달리 출하자로부터 위탁받은 농산물의 판매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회계상 매출 역시 농산물 전체 거래금액이 아니라 수수료 수입을 중심으로 잡힌다.
따라서 수수료 수입 가운데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영업이익률과 대형마트의 전체 상품 판매액을 기준으로 산출한 영업이익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회계적 성격이 다른 지표를 나란히 놓는 셈이다.
도매법인 측이 제시하는 실질 영업이익률은 출하장려금 등 산지 지원비용을 반영하면 훨씬 낮아진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도매법인은 출하 농산물의 판매만 대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출하자에게 신속하게 대금을 정산하고 낙찰 이후 중도매인에게 일정 기간 결제 여유를 제공하면서 거래 과정의 금융·정산 위험도 부담한다. 농가에는 먼저 돈을 지급하고 구매자인 중도매인에게는 일정 기간 결제의 여지를 제공하는 구조라는 점을 일반 유통업체와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도매인은 산지 직거래 못 한다"는 주장도 따져봐야
중도매인의 산지 직거래 확대를 둘러싼 주장 역시 제도 전체를 놓고 볼 필요가 있다. 현행 농안법은 도매시장 내 거래 원칙을 두면서도 상장예외품목 제도 등을 통해 중도매인이 도매시장법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예외 경로를 이미 마련하고 있다. 중도매인이 산지 생산자와 일률적으로 직접 거래할 수 없는 구조라고 규정하는 것은 실제 제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설명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도매시장 밖에서 별도 법인을 통한 산지 직거래 역시 가능하다. 결국 현재 논쟁의 본질은 '직거래가 가능한가'가 아니라 도매시장 안에서 중도매인의 산지 매수 기능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할 경우 기존의 수집·분산 기능과 경쟁 질서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가깝다.
도매법인들은 업무영역을 허물면 유통단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제도를 바꾸기보다, 그 과정에서 거래 투명성과 가격발견 기능, 출하자 보호 장치가 약화될 가능성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장도매인제' 20년...직거래 확대가 곧 가격 개선은 아니었다
중도매인의 산지 직거래 확대가 실제 농가 수취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국내 사례도 있다.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운영되는 시장도매인제다. 시장도매인은 기존 도매법인과 달리 산지에서 농산물을 직접 매수한 뒤 판매하는 방식이 가능해 이번 기자회견에서 제시된 중도매인 산지 직거래 확대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운영된 시장도매인제가 '유통단계 축소→농가 수취가격 상승→소비자가격 하락'이라는 선순환을 일관되게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품목별 거래가격도 일률적이지 않다. 최근 7일간 일부 품목의 평균 도매가격을 비교하면 감자와 수박은 가락시장의 가격이 시장도매인보다 높았지만, 양배추는 시장도매인 쪽 가격이 더 높았다. 이는 거래 방식 하나만으로 가격의 높고 낮음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시장도매인제의 거래 구조 역시 당초 기대했던 매수 중심으로 완전히 정착했다고 보기 어렵고 위탁거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검토할 대목이다.
도매법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산지 직거래를 허용하면 농가가 더 받는다"는 가설이 맞다면 이미 시장도매인제가 운영되는 시장에서 그 효과가 보다 명확하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가격과 거래량은 품목과 시기에 따라 엇갈린다. 직거래 확대 자체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도 '규제 철폐 성공 모델'로만 보기 어려워
일본 사례 역시 선택적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2018년 도매시장법을 개정해 제3자 판매와 직접집하, 상물일치 원칙 등을 완화하고 시장 개설자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했다.
이를 두고 국내 농산물 유통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의 제도 변화는 모든 시장에서 관련 규제를 일률적으로 폐지한 것이 아니다. 시장별 특성에 따라 개설자가 규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량을 확대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규제완화 이후에도 일본은 도매시장과 사업자 감소 등 구조적 문제를 겪었고 최근에는 생산비와 물류비 등을 반영한 비용정보 공개 등 공공성을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규제를 풀면 곧바로 경쟁이 확대되고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단선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농산물값 비싼 이유를 '유통 독과점' 하나로 설명할 수 있나
농산물 가격 문제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하다. 한국의 농산물 가격이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이유를 유통구조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 농업은 영농 규모가 작고 농지 면적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산지가 많은 국토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호주 등 대규모 평야 농업국가와 비교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생산비 절감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여기에 인건비와 물류비, 저장·폐기 비용, 임차료, 기후에 따른 작황 변동 등이 농산물 가격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비자가격 역시 단순히 산지 가격에 도매법인의 수수료만 더해지는 구조가 아니다. 산지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는 선별·포장·운송·저장·하역·폐기·매장 운영·인건비·임차료·판매비용 등이 누적된다. 산지가격이 떨어졌는데 소비자가격이 즉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려면 이 전체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업무영역을 허무는 것만으로 농가와 소비자가 동시에 혜택을 볼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검증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도매법인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 전에 법적 제약부터 봐야
도매법인을 둘러싼 또 하나의 오해는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도 물류·저장시설 등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도매법인의 사업영역에는 법적 제약이 존재한다.
농안법은 도매시장법인의 업무 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물류·창고업 등으로 무제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무엇보다 도매법인이 물류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경영 의지나 수익 배분의 문제로 단순화하기보다 현행 법체계가 도매법인에 어디까지의 사업을 허용하고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도매법인 해체'보다 필요한 것은 경쟁의 정교한 설계
농산물 유통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산지 가격과 소비자가격 사이의 격차가 반복되고 유통비용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는 만큼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유통비용을 낮추는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과 특정 유통주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도매법인은 농산물을 직접 매입해 이윤을 붙여 되파는 단순한 중간상인이 아니다.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을 모으고, 가격을 발견하고, 판매하고, 정산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거래 기능을 담당한다. 농가에는 판매망을 제공하고 대금을 신속하게 정산하는 역할을 하며 중도매인 등 구매자에게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와 거래 기능을 제공한다. 이 기능을 없애거나 업무 경계를 허무는 것이 곧바로 유통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도매법인 간 경쟁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 중도매인 간 경쟁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가격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할 것인지, 불필요한 물류비를 어디서 줄일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농산물 유통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복잡한 시장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이 제기한 "산지에서는 싸게 팔리는데 소비자는 왜 비싸게 사는가"라는 질문은 충분히 공론화할 가치가 있다. 다만 그 답을 곧바로 '도매법인 독과점'과 '중도매인 직거래 제한'으로 단정하는 순간, 생산·물류·저장·소매 등 가격을 구성하는 다른 변수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결국 농산물 유통개혁의 성패는 누구의 업무영역을 빼앗느냐가 아니라, 어떤 구조가 실제로 농가 수취가격을 높이고 소비자가격을 낮추는지를 데이터로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매법인 측이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유통구조를 바꾸기 전에 기존 제도와 시장도매인제의 실제 성과부터 비교하고, 직거래 확대가 농가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실제로 늘리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산물 유통개혁은 도매법인을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서 출발할 일이 아니다. 기존 유통체계가 농가 수취가격과 소비자가격, 거래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로 검증하고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각각의 기능과 비용을 따져 실질적인 경쟁과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통구조가 문제'라는 선언만으로 수십 년간 시장을 지탱해온 거래 질서를 바꾸기보다 제도 변경으로 누가 더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지부터 입증하는 것이 진정한 유통개혁에 가깝다. 근거가 검증되지 않은 '독과점' 프레임만으로 오랜 기간 작동해온 유통망의 한 축을 허무는 순간, 개혁은 시장 효율을 높이는 처방이 아니라 농가와 소비자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는 정책적 자충수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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