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9개 합수본 해산, 범죄수사의 컨트롤타워는 누가 맡나
{시사매거진 = 주성진 기자] 오는 10월 검찰청 체제가 폐지되고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형사사법체계의 대전환을 앞두면서 그동안 주요 범죄 수사의 핵심 축을 담당해 온 9개 합동수사본부·합동수사단의 존립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현재 해산 대상으로 거론되는 조직은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부 ▲국가재정범죄 합동수사단 ▲조세범죄 합동수사단 ▲선거범죄 합동수사본부 ▲기술유출범죄 합동수사단 ▲방위사업범죄 합동수사단 등 9개다.
문제는 조직의 이름이 사라지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들 합수 조직이 수행해 온 기관 간 정보공유와 전문수사 역량을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다.
정부는 오는 10월 출범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 경찰·국세청·금융당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합동수사과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중수청 직제안에는 서울·수원·대전청에 모두 5개의 합동수사과를 설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기존 합수본과 새로운 중수청 합동수사체계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78년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수사와 기소 분리’가 출발점
이번 변화의 출발점은 검찰개혁이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와 기소 기능을 분리해 중대범죄 수사는 행정안전부 소속 중수청이 맡고, 공소 제기와 유지는 법무부 소속 공소청이 담당하는 새로운 구조를 추진하고 있다. 관련 법령에 따라 공소청과 중수청 체제는 2026년 10월 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행사하던 기존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는 명확하다.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을 분리해 권한 집중을 막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기존 수사조직과 협업체계까지 동시에 재편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합수본은 하나의 기관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는 조직이 아니라 경찰, 검찰, 국세청, 금융당국, 관세청 등 여러 기관의 전문인력이 사건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사 컨트롤타워’
합수본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사건을 놓고 여러 기관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약 사건을 예로 들면 경찰의 첩보·현장수사, 관세청의 밀수·통관 정보, 해양경찰의 해상 밀반입 정보, 검찰의 사건 분석과 국제공조 등이 결합될 수 있다.
실제로 수원지검 마약범죄 정부합동수사본부에는 경찰·관세청·해양경찰청 등 8개 기관에서 86명이 참여해 비대면 마약거래와 관련된 범죄를 추적해 왔다.
보이스피싱 역시 마찬가지다.
범죄조직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고 이를 여러 계좌로 분산한 뒤 가상자산이나 해외계좌를 통해 세탁한다면 경찰 수사만으로는 사건 전체를 추적하기 어렵다.
금융정보와 통신정보, 계좌 추적, 가상자산 거래자료, 해외 자금흐름 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결국 합수본이 수행했던 핵심 기능은 ‘수사권을 가진 특정 기관’이 아니라 ‘여러 기관을 연결하는 수사 네트워크’였다는 점이다.
금융·증권범죄는 ‘전문성 단절’이 최대 변수
9개 합수 조직 가운데 경제·금융 분야는 특히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금융증권범죄와 가상자산범죄는 범죄 수법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가조작, 미공개정보 이용, 불공정거래, 가상자산 시세조종, 코인 상장 관련 범죄, 차명계좌, 해외법인을 이용한 자금세탁 등은 단순한 형사수사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거래소의 이상거래 자료와 금융기관의 계좌정보, 금융당국의 분석자료, 국세자료 등이 하나의 수사망으로 연결돼야 한다.
특히 가상자산 범죄는 자금이 국내에서 해외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에서 수사기관 간 정보공유 속도가 중요하다.
따라서 합수본 해산 이후 기관별로 수사가 분리될 경우 전문성은 유지하더라도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형사사법 문제를 넘어 금융시장 신뢰와도 연결된다.
마약·보이스피싱은 ‘골든타임’이 관건
마약과 보이스피싱도 마찬가지다. 마약조직은 국내 제조·유통 조직과 해외 공급책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보이스피싱 조직은 통신·금융·가상자산을 결합해 범죄수익을 빠르게 이동시키고 있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정부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수사기관 등의 의심정보를 공유하고 AI 기반 분석 시스템을 활용하는 등 범정부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으로 탈취된 가상자산까지 피해회복 대상에 포함시키는 제도 개선도 추진되고 있다.
범죄가 금융과 가상자산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조직 개편이 오히려 기관 간 칸막이를 강화한다면 범죄자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공중경 합수본’ 가능성…그러나 법적 근거가 문제
현재 거론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중수청과 경찰, 공소청이 함께 참여하는 이른바 ‘공중경’ 형태의 합동수사체계다.
하지만 여기에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 중수청은 수사기관이지만 공소청 검사는 기본적으로 수사를 담당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공소청 검사가 합동수사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 참여한다면 수사와 기소 분리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해당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의 증거능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기존 합수본의 운영 근거와 공소청 검사의 합동수사 참여에 따른 증거능력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단순히 기존 합수본의 간판을 중수청으로 바꾸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새로운 법적 근거와 수사절차, 기관별 권한 배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선거·기술유출·방산범죄는 또 다른 문제
선거범죄는 수사의 신속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선거는 사건 발생 이후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수사가 지나치게 늦어져도 문제가 되고, 반대로 수사기관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의심을 받아도 제도의 신뢰가 흔들린다.
기술유출과 방위사업범죄 역시 단순한 경제범죄와는 다르다.
반도체·배터리·AI·바이오 등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기업의 피해를 넘어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방위사업 관련 범죄는 방산기업, 군, 조달체계, 국방기술과 연결돼 국가안보 차원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합수단의 조직적 간판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에 축적된 전문인력과 수사 노하우를 어떻게 보존하느냐다.
‘해체’보다 중요한 것은 수사 데이터와 인력의 승계
정부는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수사인력 확보와 정보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에는 경찰청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중수청 업무에 맞게 개편해 활용하고, 이후 자체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과 전문수사 역량을 새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수사관 한 명이 가지고 있는 범죄조직의 네트워크와 사건의 맥락, 금융거래 패턴, 국제공조 경험은 인사발령 한 번으로 이전되는 데이터가 아니다.
특히 장기간 추적 중인 사건의 경우 수사팀이 바뀌면서 수사 연속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 합수본에서 진행 중인 사건을 어떻게 승계할지, 수사자료와 첩보를 어떻게 이전할지, 전문인력을 어디에 배치할지에 대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결국 ‘누가 컨트롤타워가 될 것인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체계에서 가장 유력한 중심축은 중대범죄수사청이다. 중수청은 검찰의 수사기능을 이관받아 중대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기관으로 설계되고 있으며,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합동수사과도 설치될 예정이다.
하지만 중수청이 명실상부한 범죄수사의 컨트롤타워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기관 간 공동수사의 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둘째, 경찰·국세청·금융당국·관세청 등에서 파견되는 전문인력의 지휘체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셋째, 합수팀이 확보한 자료를 기관 간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공소청과 중수청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수사와 공소유지 사이에 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사건의 정치적 민감도와 관계없이 수사 착수와 사건 배당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검찰개혁’과 ‘범죄 대응력’은 별개의 문제
이번 개편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검찰개혁 찬반 논리가 범죄 대응력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권한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제도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권한을 분산하는 것과 전문수사 역량을 분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더라도 마약·금융·가상자산·보이스피싱·기술유출·방산범죄 등에 대한 전문적인 범정부 수사역량까지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결국 개혁의 성패는 검찰이라는 조직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체계에서도 국민이 체감하는 범죄 대응력과 피해자 보호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높이는 데 있다.
10월 이후가 진짜 시험대
9개 합수본의 해산은 형사사법체계의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범죄수사 지휘체계가 검찰 중심에서 새로운 다기관 협업체계로 이동하는 실험이다.
성공한다면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전문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조직만 쪼개지고 정보공유와 전문인력의 연결고리가 약화된다면 범죄수사의 공백이라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마약, 보이스피싱, 금융·증권, 가상자산 범죄는 범죄자가 기관의 조직개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범죄는 국경을 넘고 금융과 가상자산을 넘나들며 더욱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결국 10월 이후 대한민국 형사사법체계가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는 시대에, 누가 대한민국의 중대범죄를 끝까지 추적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수사권, 전문인력, 정보, 국제공조를 실제로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것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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