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희 하버드대 교수 "뇌 신호 정밀 측정이 뉴로모픽 반도체 출발점"
최종현학술원 특별강연서 반도체 기반 신경 신호 측정 플랫폼 'iMEA' 소개 수천 개 뉴런 내부 전기 신호 동시 측정…7만 개 시냅스 연결 재구성 성과 제시
[시사매거진 이규혁 기자] 반도체 칩을 활용해 수천 개 뉴런 내부의 전기 신호를 동시에 측정하는 기술이 차세대 뉴로모픽 컴퓨팅 구현의 핵심 기반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종현학술원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 빌딩에서 함돈희 하버드대 공학·응용과학부 석좌교수를 초청해 뉴로모픽 컴퓨팅 특별강연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함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신경과학과 반도체 공학의 융합을 통해 인간 뇌의 정보처리 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차세대 컴퓨팅 기술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 성과를 소개했다. 핵심은 반도체 기반 신경 신호 측정 플랫폼인 'iMEA(Intracellular Microelectrode Array)'였다.
'iMEA'는 살아있는 신경세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대규모로 동시에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개별 세포 수준의 정밀도와 대규모 신경망 분석 능력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점에서 신경과학 분야의 오래된 과제로 꼽혀온 '정밀도와 규모의 딜레마'를 극복할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함 교수는 신경과학 연구가 오랫동안 정밀 측정과 대규모 분석 사이에서 한계를 겪어 왔다고 설명했다. 기존 패치 클램프(Patch Clamp)는 세포 내부의 미세 전압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지만, 한 번에 관찰할 수 있는 뉴런 수가 제한적이다. 반면 마이크로 전극 어레이(MEA)는 수백~수천 개 뉴런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으나 세포 외부 신호 측정에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뉴런의 전기 신호는 크게 활동전위(AP)와 시냅스후전위(PSP)로 구분된다. AP는 신호 크기와 형태가 비교적 일정해 세포 외부에서도 측정이 가능하지만, PSP는 뉴런 간 정보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신호로 정밀 측정이 어렵다. PSP는 뉴런 내부에서 통합돼 발화 여부를 결정하며, 신경망의 정보 처리와 연산 구조를 이해하는 핵심 단서로 꼽힌다.
함 교수는 "PSP는 약 1밀리볼트(mV) 수준에 불과해 기존 마이크로 전극 어레이로는 측정하기 어렵다"며 "개별 세포 수준의 정밀한 정보와 대규모 신경망 분석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함 교수 연구팀은 10여 년간 반도체 기반 신경 신호 측정 플랫폼인 'iMEA'를 개발해 왔다. 이 기술은 반도체 칩 위에 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홀(hole)' 구조 전극을 제작하고, 세포가 해당 구조 위에 안착하면 전극 주변이 밀봉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후 미세 전류를 가하면 세포막이 일시적으로 열리며 세포 내부 전기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기존 기술이 소수 뉴런의 정밀 측정과 대규모 신경망 관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iMEA'는 세포 내부 신호를 대규모로 병렬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함 교수는 "기존에는 정밀하게 보거나 많이 보거나 둘 중 하나만 가능했다면, 우리의 목표는 정밀하게 보면서 동시에 많이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iMEA'를 활용해 반도체 칩 위에서 배양된 수천 개 뉴런의 활동을 분석했다. 하나의 칩에는 약 4000개의 전극이 집적됐으며, 쥐 뉴런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평균 3600개, 최대 3900개 전극에서 동시에 세포 내부 신호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약 7만 개 규모의 기능적 시냅스 연결 지도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함 교수는 뇌의 정보처리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런 자체보다 뉴런 간 연결 부위인 시냅스를 정밀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뇌의 기억과 학습은 시냅스를 통해 이뤄진다"며 "시냅스의 연결 강도와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뇌의 정보처리 원리를 규명하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신경과학뿐 아니라 차세대 컴퓨팅 기술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재 인공지능(AI) 시스템은 대규모 연산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과 데이터 이동 비용을 필요로 한다. 반면 인간의 뇌는 약 20와트(W)의 에너지로 학습과 추론, 기억 기능을 수행하는 고효율 정보처리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함 교수는 "현재의 컴퓨터는 기억장치와 연산장치가 분리돼 있지만, 뇌는 기억과 연산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동시에 이뤄진다"며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미래 컴퓨팅 패러다임을 설계하는 과정과 직결된다"고 밝혔다.
함 교수는 현재 체외(in-vitro) 신경세포 배양 단계를 넘어 살아있는 동물의 뇌에서 신경 신호를 측정하는 인비보(in-vivo)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뇌 조직의 움직임에 따른 미세 진동, 전극 삽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면역 반응 등은 장기간 안정적인 측정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어진 대담에서는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아 함 교수와 뉴로모픽 반도체의 기술적·산업적 가능성을 논의했다. 대담에서는 인간 뇌의 학습·기억 메커니즘이 차세대 반도체 설계에 제공할 수 있는 시사점과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함 교수는 현재 산업계에서 논의되는 뉴로모픽 반도체가 아직 인간 뇌의 작동 원리를 충분히 구현한 단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만 메모리와 연산의 통합, 초저전력 정보처리,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 등 뇌의 특성이 향후 반도체 설계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뇌는 메모리와 연산이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로, 현재의 폰노이만 아키텍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시냅스 연결 지도를 더욱 정밀하게 구축할 수 있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한 차세대 뉴로모픽 칩 설계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인 목표는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며 판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신경과학과 반도체 공학의 융합을 통해 인간 뇌의 정보처리 원리를 규명하고, 이를 미래 컴퓨팅 기술로 연결하는 연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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