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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환경칼럼] 우리는 왜 또 다시 원전을 지어야 하는가
탄소중립의 길은 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 우선
국내 최초의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 후보지로 부산 기장군이 선정됐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신규 원전 사업의 일환으로 대형 원전 2기는 경북 영덕군에, SMR 1기는 부산 기장군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입지 선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인류적 과제 앞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에너지 체계를 선택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원전 산업계는 SMR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이고 탄소 배출이 적은 전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SMR이 적임자라는 시각이다. 또한 SMR이 상용화되면 원전 수출과 첨단 제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이러한 주장에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산업사회는 전력을 필요로 하고, 에너지 공급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특히 AI 시대에 전력은 곧 산업의 혈액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원전 확대가 생태문명의 전환이 요청되는 기후위기 시대의 정답인가 하는 것이다.
SMR은 아직 미래가 아니라 가설에 가깝다
SMR은 기존 원전을 소형화한 차세대 원자로다. 건설 기간 단축, 향상된 안전성, 모듈화 생산을 통한 경제성 확보 등이 장점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SMR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부분은 설계 인증 단계이거나 실증 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아직 경제성도, 안전성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경제성은 SMR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된다. 원전 업계는 대량 생산 체계가 갖춰지면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래의 가정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SMR 프로젝트는 급격한 건설비 상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효능성 문제도 따른다. 기후위기 대응은 지금 당장 필요한 과제인데, SMR은 빨라야 2030년대 중반 이후에나 본격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원자로는 작아져도 핵폐기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핵폐기물이다. SMR이 아무리 작아도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발생한다.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성도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미 고준위 핵폐기물의 영구 처분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또 다른 원전을 추가하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전은 전기를 생산하는 몇십 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미래 세대에게 관리 책임을 남긴다. 오늘의 편의를 위해 수천 년의 부담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과연 지속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태문명은 단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위험과 비용을 넘기지 않는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수도권은 안 되고 기장은 되는가
SMR의 또 다른 장점으로 흔히 전력 수요지 인근 설치가 가능하다는 점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대한민국에서 전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반도체 산업단지가 밀집한 경기 남부다.
그런데 SMR은 왜 그곳이 아니라 부산 기장군에 들어서는가. 결국 원전은 여전히 위험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전력은 수도권이 소비하지만 위험은 지방이 부담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장군은 이미 국내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국가 전력 공급을 위해 오랫동안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럼에도 또다시 새로운 원전 실증사업까지 떠안게 되는 현실은 에너지 정의의 관점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탄소중립의 길은 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다
원전 옹호론자들은 원자력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단순히 발전소의 배출량만으로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에 기반한 산업문명의 한계에 있다. 따라서 진정한 해법은 발전소를 하나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서 찾아야 한다.
분산형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 전력망 혁신, 건물과 산업의 에너지 절감, 지역 에너지 자립체계 구축 등이 우선 과제다.
특히 세계 시장은 이미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RE100은 원자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수출 경쟁력의 핵심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다. 결국 원전은 기후위기 해결의 중심축이 아니라 보조적 수단일 수는 있어도, 에너지 전환의 본질적 해법은 될 수 없다.
기술낙관주의를 넘어 생태문명의 시대로
SMR 논쟁의 본질은 원전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명으로 전환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산업문명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거대 기술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에너지 소비와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생태문명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SMR은 미래 산업의 한 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후위기의 만능 해법인 것처럼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과도한 기대를 걸기보다, 이미 가능성과 경제성이 입증되고 있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혁신에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원전을 더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전력 공급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며, 생태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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