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정유정, 다시 정상을 향해
[시사매거진 김진석 기자] 경남체육고등학교 3학년 정유정이 슬럼프를 딛고 다시 정상 도전에 나서고 있다. 최근 열린 제56회 협회장기 전국태권도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회복의 신호를 알린 그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여자 태권도 기대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유정은 2025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국내 여자 고등부를 대표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여자고등부 -57kg급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아시아 청소년 태권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부 -59kg급 정상에 오르며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후 2025 아시아 청소년 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국제무대 경험을 쌓으며 차세대 여자 태권도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전한 전국 우수선수 선발 태권도대회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학부와 실업팀 선수들이 출전한 여자부 -57kg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경험과 체력에서 앞선 선배 선수들을 상대로 거둔 성과는 정유정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시킨 결과로 평가받았다.
기세는 2026년에도 이어졌다. 시즌 첫 전국대회인 제21회 제주평화기 전국태권도대회 여자고등부 라이트급 우승을 차지하며 꾸준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도전자의 위치에서 정상에 오른 선수로 자리매김한 만큼 기대와 책임도 함께 커졌다. 전국대회 우승자이자 청소년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유정은 스스로에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차 경기력보다 결과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고, 이는 경기장 안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3·15의거기념 전국태권도대회 8강, 5·18민주화운동기념 전국태권도대회 8강, 용인대학교총장기 전국태권도대회 3위.
객관적으로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지만 스스로 만족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성적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경기 전 자신감보다 걱정이 앞섰고, 평소라면 과감하게 시도했을 공격도 망설이게 됐다. 기술적인 문제보다 심리적인 부담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정유정은 중·고연맹 전국태권도대회와 태권도원배 전국태권도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회를 쉬는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유정은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택했다.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훈련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는 기술을 점검하고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틈틈이 독서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과 명언을 공책에 적어가며 흔들렸던 멘탈을 정비했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어제보다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에 몰두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노력은 제56회 협회장기 전국태권도대회에서 결실로 이어졌다. 정유정은 여자부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은메달이다. 하지만 정유정에게 이번 준우승은 단순한 순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정유정은 "정말 모든 게 힘들었다. 성적이 나오지 않다 보니 조급한 마음이 앞섰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며 "경기장에서 자신 있게 하던 플레이도 망설이게 됐고 그럴수록 결과도 따라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잠시 멈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훈련했다"며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쳐 아쉽기도 하지만 다시 자신감을 찾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대회였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더 강한 선수로 성장해 다시 정상에 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곁에서 지켜본 박진관 코치 역시 정유정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박 코치는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슬럼프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며 "유정이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갔다. 그래서 이번 준우승은 어떤 우승보다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선수다. 이번 경험은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한 자산이 될 것"이라며 "성인 국가대표는 물론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정유정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잠시 주춤했던 시간은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 협회장기 준우승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에 가깝다.
정유정은 지금도 묵묵히 훈련장을 지키며 다시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흔들렸기에 더욱 단단해졌다. 이번 협회장기 전국 태권도대회 은메달은 여왕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더 큰 목표를 향한 도전은 이제 다시 시작됐다. 슬럼프를 이겨낸 선수는 강하다. 슬럼프를 성장의 기회로 만든 선수는 더욱 강하다. 그리고 지금, 묵묵히 또 꾸준하게 정유정은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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