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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환경칼럼] 42만 드럼의 경고

원전 방사성폐기물, 줄어든 전망이 던지는 더 큰 질문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3차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2054년까지 국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누적 발생량은 약 42만 드럼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 계획(53만 드럼)보다 11만 드럼이나 줄어든 수치다. 겉으로 보면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이 만들어낸 ‘지연된 현실’에 가깝다.

핵심은 원전 해체의 지연이다. 고리2호기 등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폐쇄·해체하지 않고 계속 운전하는 정책이 반영되면서, 대규모 해체 폐기물이 당장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즉 폐기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뒤로 밀린’ 것이다.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현재의 통계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이미 2024년 기준으로 약 16만8천 드럼의 중저준위 폐기물이 누적되어 있다. 여기에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까지 더해지면 발생량은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처리와 처분 속도다. 폐기물은 쌓여 가지만, 처분 능력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저장 용량을 7천 드럼에서 1만7천 드럼으로 확대하고, 2031년까지 3단계 처분시설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속도 조절’이지 ‘근본 해결’은 아니다. 폐기물은 계속 쌓이는데, 처분시설은 사회적 갈등과 지역 반발 속에서 늘 지연되어 왔다.

결국 우리는 “얼마나 빨리 처리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쌓아두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디지털트윈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관리 고도화를 강조한다. 물론 이는 관리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은 ‘관리 방식’을 개선할 뿐, ‘폐기물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특히 SMR 도입은 또 다른 변수다. ‘차세대 원전’이라는 이름과 달리, 새로운 유형의 폐기물을 발생시키며 기존 기준으로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 존재한다. 기술이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새로운 문제를 추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사성폐기물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다. 정부는 국민 참여 확대와 소통 플랫폼 구축을 강조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정보 비대칭과 불신이 크다.

특히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처분시설이 ‘국가적 필요’가 아니라 ‘지역적 희생’으로 받아들여진다. 안전 기준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설계되어도,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정책은 추진력을 얻기 어렵다. 안전은 과학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원자력은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 문제는 이 선택의 ‘숨은 비용’이다.

지금의 정책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대신, 장기적인 환경 위험을 미래로 넘기는 구조다. 수만 년 동안 관리가 필요한 폐기물을 남기는 에너지 체계를 ‘지속가능’하다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42만 드럼이라는 숫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다. 해체를 미루고, 미래 부담을 뒤로 넘긴 결과라면 이는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회계상의 착시’일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숫자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첫째, 폐기물 발생 자체를 줄이는 에너지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해체를 포함한 전 주기 관리 정책을 현실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셋째, 기술이 아닌 신뢰를 중심에 둔 사회적 합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문제는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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