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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의 프레임] “붉고 어지러운 마음…끝내 닿지 못하고”

출처_음악저널 8월호 국내 리뷰 풀랑크의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7월 3일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강렬한 붉은색이었다. 바닥과 천장을 뒤덮은 붉은 빛과 무질서하게 흩어진 오브제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 불안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름답다기보다 위태롭고, 익숙하다기보다 기이한 공간은 앞으로 펼쳐질 비극을 예고하는 하나의 미장센이었다.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김보연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김보연

더하우스콘서트가 '프랑스의 빛'을 주제로 선보이는 2026 줄라이 페스티벌은 드뷔시, 라벨, 메시앙 등 프랑스 음악을 집중 조명하는 한 달간의 축제다. 그 가운데 유일한 오페라로 무대에 오른 작품이 프란시스 풀랑크의 단막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La voix humaine)였다.

장 콕토의 1930년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1958년 완성된 이 작품은 약 45분 동안 단 한 명의 소프라노가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다. 무대 곳곳에 흩어진 전화기와 뒤엉킨 케이블은 이미 끊어질 듯 위태로운 관계를 암시한다. 하지만 전화선 너머 연인의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관객은 오직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음악만으로 관계의 균열과 사랑의 붕괴를 상상하게 된다.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이번 공연에는 소프라노 이한나, 피아니스트 정소라, 댄서 김연화, 연출가 조은비가 함께했다. 프랑스어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공연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무대 전체가 하나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사물들은 복잡한 내면을 드러냈고, 소통을 갈망하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목소리는 애절함을 더했다. 피아노는 불안한 심리를 집요하게 긁어냈고, 댄서의 몸짓은 찢어질 듯한 절규를 시각화했다. 객석 역시 그녀의 호흡을 따라 숨을 죽였고, 어느새 무대의 일부가 됐다. 더하우스콘서트 특유의 가까운 거리감은 긴장과 떨림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공연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음악은 날카로운 트릴과 함께 시작된다. 마치 "이 이야기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에 관한 이야기"라고 선언하는 시그널처럼 들렸다. 풀랑크 특유의 감각적인 음악은 드뷔시를 연상시키는 서정성과 예리한 불협화음이 교차하며 인물의 심리를 끊임없이 흔든다. 아리아보다 레치타티보 중심으로 전개되는 음악은 대사와 노래의 경계를 허물며, 사랑과 집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냈다.

소프라노 이한나는 애절한 선율과 무언의 시선만으로도 한 여성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김연화는 그 감정을 몸으로 받아내며 뒤틀리고 쓰러지고 바닥을 구르는 움직임으로 언어 너머의 절망을 표현했다. 정소라는 오케스트라를 대신한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다채로운 음색과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무대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했다.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Shin-joong Kim

연출가 조은비는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린 이유를 “팬데믹 이후 우리가 또 다른 형태의 고립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크린을 통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사람의 목소리와 온기에는 쉽게 닿지 못하는 시대, 작품 속 불안과 집착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품이 품은 질문은 70년이라는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떠나가는 연인에게 "잘 지내, 난 괜찮아, 사랑해"를 반복하지만 전화는 계속 끊어지고, 진심은 끝내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통화는 이어지지만 관계는 이미 무너져 있다. 그래도 그녀는 마지막에 주 템므(Je t'aime, 사랑해)를 연거푸 외치며 극을 마무리한다.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김보연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 ⓒ김보연

지금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있지만 모두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표정을 놓친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한 시선을 잃은 채 살아간다. 연결은 넘쳐나지만 공감은 줄어들고, 대화는 많아졌지만 진심은 더욱 희미해졌다.

그래서 풀랑크의 <인간의 목소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목소리와 온기,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일깨운다.

줄라이 페스티벌 셋째 날, 더하우스콘서트가 건넨 이 한 편의 오페라는 결국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서로의 진심이 끝내 닿는다는 것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

2026 더하우스콘서트 줄라이 페스티벌_풀랑크의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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