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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상식의 풍수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CEO의 직무상 테이블 방향(方向)은 함부로 놓이지 않는다. 사람의 태어난 사주(四柱)와 기질(氣質)에 맞추어 방향을 잡는다. 기업은 회계 책임자의 위치도 이 범위 안에 두고 자리 배치를 한다. 일반인들은 단순히 책상을 놓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사람과 방향, 공간(空間)의 흐름을 함께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 경로당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쉽게 본다. 화투놀이를 하다가 계속 잃는 사람이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신기하게도 자리를 바꾸고 나면 잃던 사람이 따고, 따던 사람이 잃는다. 오래 지켜본 이들은 자리에도 방향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이것은 앉은자리가 본인과 상충(相衝)되는 방향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리기운(氣運)에 민감하다.
요즘 젊은 층은 침대 방향에도 관심이 많다. 사람마다 피해야 할 방향이 있다. 어떤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몸은 누워 있어도 편안함이 작아진다. 또 침대 머리맡에 거울을 두는 경우가 있는데, 한밤중 외부의 불빛이 거울에 비치면 그림자가 흔들리며 심리적 불안감을 만든다. 침대 머리맡의 거울은 방향을 돌리거나 접이식 거울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잠은 하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침대는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는 자리다. 방향을 정할 때는 풍수적 원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채광(採光)과 통풍(通風), 동선(動線)과 실내 구조를 함께 살펴야 한다. 풍수도 자연과 생활환경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침대 머리 방향이 방문과 일직선이 되는 구조도 피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단순히 복(福)의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관계가 있다. 사람이 잠든다는 것은 가장 무방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긴장을 놓지 못한다. 풍수는 거대한 벼슬처럼 말하지 않고, 감각과 심리, 공간 내부의 안정감 속에서 생겨난 생활의 이치(理致)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풍수의 금기(禁忌)를 무조건 따르는 데 있지 않다. 생활하는 공간에서 무엇이 편안하고 불편한지를 미리 살피려는 데 의미가 있다.
자연에는 본연의 살(煞)이 있다. 봄과 여름이 지나 가을에 서리가 내려 풀을 죽이는 것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죽이는 기운이 아니라 생명을 쉬게 하는 자연의 기운을 말한다. 성장과 쉼을 번갈아 운영하며 자연의 균형(均衡)을 유지하는 흐름이다.
사람도 태어나면서 본연의 기질과 흐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풍수에서는 이에 준하여 침실과 책상 등의 방향을 살핀다. 동서남북에 주어진 기운과 살이 작용하듯 사람의 기질도 음양오행(陰陽五行) 속에서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가 서로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태생적 살(煞)과 돌아가신 해의 살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다른 산에 모시는 경우도 있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요즘은 화장(火葬) 비율이 높아지며 이런 고민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세상을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참으로 가릴 것이 많다. 집은 물론 공장이나 카페도 건축(建築)과 인테리어를 마무리한 후 입주해야 한다. 급한 마음에 입주 후 부분 수리를 반복하면 사업의 흐름도 후퇴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산삼도 나는 자리가 있고, 고기도 잡히는 자리가 있다. 모두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어떤 공간에서는 일이 풀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자꾸 막힌다. 풍수는 바로 그 흐름을 읽으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풍수지리(風水地理)가 복잡하고 어렵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자연의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도 자연스럽게 타고 다닌다. 해가 지면 다음날 아침이 오는 것처럼 풍수도 일상 속 순리(順理)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무엇이든 검토하고 불합리하면 버리고 합리적이면 받아들이면 된다. 산소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의 결과가 오랜 시간이 지나 나타나지만, 상업의 공간은 몇 개월 안에도 결과가 드러난다. 결국 현실 속에서 참과 거짓은 스스로 판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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