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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44]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 “실내악의 투명함과 정교함으로 재해석한 말러”

제9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44

대규모 관현악의 폭발적인 음향으로만 말러를 접해 온 음악팬들에게 말러의 교향곡이나 가곡은 대형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로만 익숙하다. 하지만 관현악의 뒤편에 숨겨진 말러 특유의 내면과 실내악적 구조를 챔버 오케스트라로 정교하게 세공해 낸 무대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계 정상급 현악 앙상블과 거장의 3년 만의 재회 

1994년 강효 줄리어드 음대 교수가 8개국 출신의 뛰어난 젊은 연주자 11명을 모아 창설한 세종솔로이스츠는, 카네기홀 21회 공연을 비롯해 전 세계 120개 이상 도시에서 7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소화하며 미국 CNN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앙상블 중 하나”라는 극찬을 받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현악 오케스트라다. 이들과 영국의 대표적인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의 인연 또한 깊다. 지난 2023년 내한 투어에서 깊이 있는 가곡 해석을 선보였던 이들이 3년 만에 다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번 연주회는 말러 가곡이 지닌 시적 본질과 실내악적 정교함을 재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지휘자 없이 세종솔로이스츠 단독으로 베토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말러 편곡판)로 시작했다. 실내악적 민첩함이 돋보였으나, 원곡의 팽팽한 긴장과 응축 그리고 말러 편곡판 특유의 중후한 저역의 레이어를 밀도 높게 구현했는가에는 다소 의문이 남았다.

이어 윤한결의 지휘로 이안 보스트리지가 무대에 오르며 본격적인 말러 가곡 연주로 이어졌다.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 발췌곡(기상나팔,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울리는 곳, 북치기 소년)은 클라우스 지몬(Klaus Simon)의 실내악 편곡을 토대로 보스트리지의 음색에 맞게 다듬어진 버전이었다. 목관과 호른, 타악기, 피아노 및 현악기가 빚어내는 독특한 앙상블은 대편성의 색채를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다만 일부 대목에서 금관악기군의 울림이 정제되지 못해 세종솔로이스츠 현악 성부의 섬세한 프레이징을 부분적으로 가리는 다이내믹의 아쉬움을 남겼다.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이러한 음향적 불균형 속에서 1부의 음악적 긴장감과 비극적 정조를 중심에서 지탱해 낸 것은 타악기 섹션이었다. 특히 객원으로 참여한 루이빌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최금성의 타악 연주는 절제된 타격감과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작품에 내재된 군가적 모티프(Martial motif)와 비애감을 정교하게 살려냈다. 그 위에서 보스트리지는 특유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음색, 정교한 독일어 딕션으로 비극적 체념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콜린 매튜스 편곡과 보스트리지의 정교한 텍스트 해부 

2부 역시 지휘자 없이 세종솔로이스츠 단독으로 연주한 슈만 현악사중주 1번 3악장 아다지오(제프리 로프 편곡)로 정서적 완충지대를 만든 후, 무대의 하이라이트인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로 연결되었다. 작곡가 콜린 매튜스(Colin Matthews)가 보스트리지를 위해 위촉 편곡한 이 버전은 대형 관현악 편성을 실내악 스케일로 축소하여 각 성부의 투명도를 극대화했다.

제3곡 ‘타는 듯한 단검으로’의 비장한 폭발력과 제4곡 ‘그녀의 푸른 눈동자’로 이어지는 피날레에서, 보스트리지의 음성이 지닌 정교한 아우라는 보리수 아래 잠드는 청춘의 체념을 시적으로 완성해 냈다. 지휘자 윤한결 역시 2부에서는 보스트리지의 섬세한 음성을 지키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을 한층 정밀하게 조율해 내는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사진_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끝으로 쏟아지는 박수 갈채에 화답하듯 이어진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깊은 감동을 안긴 절창이었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노래는 이날 무대가 남긴 여운을 더욱 깊게 했다. 일부 음향적 밸런스에서 정제되지 못한 순간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주회는 거대한 음향에 가려졌던 개별 악기들의 선과 색채를 투명하게 드러내며 말러 가곡이 지닌 시적 본질을 재발견하게 한 의미 있는 무대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제9회 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제9회 힉엣눙크!뮤직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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