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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환경칼럼] 원전, 이제는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현,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현,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

국가적 최대 난제이자 원전 정책의 최대 뇌관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정 전문가 심의기구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 ‘3년 공전·태백 URL 논란’ 딛고 마침내 정상 궤도에 오른 셈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확보는 원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전제다. 그러나 지난 윤석열 정부 시절 원전 확대 기조 속에서도 고준위 문제는 정쟁과 사회적 갈등에 갇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이제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가 출범하고 4개 분야 전문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인정하고,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원자력발전이 만들어내는 전기를 편리하게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하고 최종적으로 어디에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마련하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화장실 없는 집을 지어놓고 살아온 셈이다. 집을 지을 때 거실과 주방, 침실은 만들었지만 정작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을 어디에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임시로 담아두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미뤄왔다.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를 당장 보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임시저장시설은 말 그대로 임시저장시설일 뿐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건식저장시설은 집 안에 마련해 놓은 ‘요강’과 같은 것이다. 당장의 필요를 해결하는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그것을 영구적인 화장실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요강만 자꾸 늘일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

상황은 급박하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쌓이고 있다. 저장공간이 부족해지면 원전 소재지역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부산과 인접한 고리원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원전을 이용해 온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다. 동시에 원전 소재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위험과 부담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이번 고준위위원회의 출범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지 선정은 단순히 ‘어디가 받아들일 것인가’를 찾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지질학적 안전성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과학적 검증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지역주민의 동의와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처분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 대한 정당한 지원과 보상체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정부가 먼저 결론을 정해놓고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수백 년, 수천 년을 넘어 관리해야 할 문제다. 정권의 임기보다 훨씬 긴 시간의 문제를 눈앞의 정치 일정에 맞춰 서둘러서는 안 된다. 이번 전문위원회에는 원자력계뿐 아니라 안전 전문가와 시민사회 등 다양한 목소리가 참여한다고 한다.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 필요하다. 원전을 찬성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도, 원전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책임 있는 해법을 찾는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에는 완벽하게 편안한 해법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투명해야 하고, 더욱 엄격해야 하며, 더욱 민주적이어야 한다. 원전을 계속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전 정책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룰 수 없다. 화장실 없는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 더 이상 임시저장시설의 증설만으로 시간을 벌어서도 안 된다. 국가가 책임지고 영구처분에 이르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전 소재지역과 미래세대가 또다시 일방적인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의 출범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기대한다. 원전을 이용해 얻은 편익은 현재 세대가 누렸지만, 그 쓰레기의 위험까지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전기를 사용한 만큼, 폐기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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