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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시사칼럼] 문화는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부산시의 문화행정,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외래교수.

많은 시민들의 기대와 함께 민선 9기 부산시정이 출범했다. 시민들의 기대는 한마디로 '변화'에 있을 것이다. 기존의 시정과 다른 변화와 개혁, 이를 통한 부산의 도약이 민선 9기 전재수 시정에 바라는 바 아니겠나. 물론 새로운 시정은 과거의 성과를 계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적 논란이 컸던 정책에 대해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미 전임 시정의 적절치 못한 계획에 대해서는 과감히 혁파하겠다는 약속을 시민들에게 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라 스칼라 개관 공연과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추진 문제다. 부산 문화행정의 핵심 현안인 부산오페라하우스와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추진 문제는 민선 9기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판단이 요구됐던 대표적인 사안이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과거 정책과의 명확한 단절이나 전면적인 방향 전환보다는 ‘신중한 접근’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 사업에 대한 변화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대규모 문화사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 역시 행정의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이미 투입된 예산과 시민적 기대, 사업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임시장의 추진 과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흔적 지우기'라고 반발하는 야당 시의회의 정치적 공세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중함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 결과인지, 아니면 야당 시의회와 정치적 논쟁 속에서 변화의 부담 때문인지 시민들은 알기 어렵다. 

과거 시정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진정 부산의 미래를 위한 판단인지, 아니면 논란이 다소 발생하더라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민선 9기라면 무엇보다 시민 앞에 분명한 비전과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문화는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 도시의 문화 경쟁력은 해외 유명 기관의 이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예술인과 시민들의 창작 활동, 일상의 문화 향유, 그리고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 생태계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 부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역 예술인들은 제작비 부족으로 공연을 포기하고, 청년 예술인들은 활동 기반을 찾아 부산을 떠나고 있다. 지역 문화단체들은 안정적인 공간과 지원 부족을 호소한다. 문화예술의 토양은 여전히 척박한데 행정은 화려한 국제 프로젝트를 도시 경쟁력의 상징처럼 내세우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문화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논란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과의 협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산의 자연환경과 공공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추진되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기대는 부산 시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자연유산이다. 단순한 개발 대상지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생태자산이다. 세계적 브랜드를 얻기 위해 자연 훼손과 시민 갈등을 감수하는 방식이라면, 그 정책은 다시 한번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문화는 도시를 꾸미는 장식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공재다. 그래서 문화정책은 규모보다 철학이 중요하고, 이벤트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해외 유명 공연 한 편보다 지역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큰 문화정책이다. 세계적인 미술관 하나보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지역 문화생태계가 더 소중하다.

이제 민선 9기 부산시는 선택해야 한다. 부산이 진정 세계적인 문화도시를 지향한다면 그 출발점은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부산 사람이어야 한다. 지역 예술인을 키우고, 시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며, 자연과 공공성을 함께 지키는 정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만드는 길이다.

도시의 품격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값비싼 해외 공연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시민이 문화의 주인이 되고, 지역 예술이 뿌리내리며,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가 된다. 부산 시민들이 원하는 것 또한 또 하나의 세계적 간판이 아니다. 부산다운 문화, 시민이 체감하는 문화,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문화도시의 비전이다. 이제 부산은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시민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도시로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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