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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이삿날, 마음도 함께 옮겨간다

풍수 칼럼리스트 송달
풍수 칼럼리스트 송달

예전에는 집을 새로 짓기보다 고치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당시의 주거는 한 번 지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증축과 보수를 거듭하며 이어졌다. 이삿날이면 집의 곳곳을 손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주방가구와 실내 옷장도 대부분 손수 만들었고, 벽에는 나뭇가지로 옷걸이를 달고 나무판을 다듬어 부엌용품을 마련하였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집을 정리한 뒤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생활문화 속에서 이삿날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전해져 왔다. 풍수에서는 상충살(相沖煞)이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각 이틀씩 머문다고 본다. 곧 1·2일은 동쪽, 3·4일은 남쪽, 5·6일은 서쪽, 7·8일은 북쪽에 해당하며, 9일과 10일은 어느 방향에도 살(煞)이 미치지 않는 날로 여겼다. 민간에서는 이를 손 없는 날이라 불렀다. '손(損)'은 예로부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액운이나 해로운 기운을 뜻하는 말로, 손이 없는 날에는 이사 후 부분수리를 해도 탈이 적다고 믿었다. 정작 풍수에서 더욱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이삿날보다 입주 이후의 공간이다.

이사하기 전의 집수리와 이사 후의 집수리는 그 의미가 다르다. 사람이 거주하기 전의 건축물은 아직 생활의 기운이 머물지 않은 공간이다. 이사 전에 수리를 마치는 것은 자연의 흐름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고 본다. 거주(居住)가 시작되면 공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기운이 함께 머무는 터전이 되어 그 기운도 함께 움직인다. 예부터는 이사 전에 필요한 부분수리를 모두 마친 뒤 입주하는 것을 바른 순서로 여겼다.

상업시설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흔히 접하게 된다. 잘되던 식당이나 상가를 인수한 뒤 내부수리를 모두 마치지 못한 채 영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원인을 풍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사고나 직원 간 갈등, 매출 감소가 이어지는 사례를 접하기도 한다. 풍수는 이를 기운이 안정되기 전에 공간을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영업 중 간판 교체나 주방 확장, 대규모 가구 재배치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살(煞)의 방향으로 이사하는 것과 살의 방향에서 수리를 하는 것을 같은 이치로 본다.

조선 왕실 역시 궁궐을 신축(新築)하거나 중수(重修)할 때 날짜와 의례를 엄격히 정하였다.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에는 공사의 시일과 상량식(上樑式), 각종 의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건축을 국가의 중요한 의례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다만 민간에서 전해지는 9일과 10일의 이삿날을 궁중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는 직접적인 사료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지금도 일부 기업들은 사옥(社屋) 이전이나 공장 이전, 건물 신축(新築)과 입주(入住) 날짜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굳이 꺼리는 날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눈비 오는 날 자동차 속도를 줄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미신이라 말하기보다는 위험을 줄이려는 하나의 지혜로 이해할 수도 있다.

또한 건물의 착공(着工) 일과 준공(竣工) 일을 정하고, 입주식(入住式)을 하거나 고사를 지내는 문화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사가 액운(厄運)을 막아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것보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시작을 경건히 하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흥망성쇠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일이 잘되면 '운이 따랐다'라고 하고,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운이 다했다'라고 말한다. 운(運)이라는 말속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의 흐름이 스며 있음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날짜를 정하고 공간을 정성껏 꾸미는 마음도 좋은 기운을 바라는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천지와 남녀, 길(吉)함과 흉(凶)함은 서로 마주하면서도 함께 존재하는 이치이다. 길함만 있고 흉함이 없을 수 없으며, 흉함 또한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칼날 위를 걷는 것 같다는 말도 작은 변화 하나가 길흉을 바꾸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는 누구도 대신 가르쳐 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덕을 쌓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일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와 함께 지혜가 쌓이고, 그 지혜는 다시 구전과 글이 되어 후세에 전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미신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보이지 않는 질서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반드시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삶 속에서 축적된 경험을 존중하는 마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풍수는 미래를 맞히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질서를 되돌아보는 학문이다. 자연은 누구를 특별히 돕지도, 누구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이치를 묵묵히 이어갈 뿐이다. 그 흐름을 이해하고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풍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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