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천살의 부동산 칼럼] 배달비 만 원 시대의 역설: ‘철가방’이 사라진 골목상권의 지각변동
왜 지금 대형 상가는 경매장으로 향하고, 5평짜리 이면도로 소형 상가가 뜨는가
■ 프롤로그: 2만 7천 원짜리 닭발 영수증이 말해주는 가혹한 현실
과거 짜장면 한 그릇, 짬뽕 한 그릇만 시켜도 철가방을 든 배달원이 번개처럼 나타나 음식을 건네고, 다 먹은 그릇을 회수하기 위해 또 한 번 찾아오던 ‘두 번의 주행’이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신뢰와 정이 살아있던 이 정겨운 직접 배달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닭발 몇 조각에 사이드 메뉴 하나만 추가해도 3만 원에 육박하는 가혹한 배달 물가와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무서워서 배달 음식을 못 시켜 먹겠다”는 소비자의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골목상권의 자영업자들 역시 “남는 게 없어 죽겠다”며 비명을 지른다. 이 모순적인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이 변화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던지는 경고는 무엇일까. 본 칼럼에서는 거대 플랫폼의 수수료 구조와 고정비의 역학관계를 통해 상가 투자의 패러다임 전환을 정밀 분석하고자 한다.
■ 제1막: 거대 배달 플랫폼의 독과점과 ‘마진 잠식’의 부메랑
소비자가 지불한 거금 중에서 동네 가게 사장님의 손에 쥐어지는 순수 마진은 턱없이 적다. 스마트폰 앱 중심의 소비 패턴 변화는 거대 배달 플랫폼의 독과점 생태계를 공고히 만들었다. 현재 배달 앱들은 정액 광고비를 넘어 건당 6%~10%에 달하는 중개 수수료를 기본으로 징수한다. 여기에 라이더 매칭 비용과 플랫폼 전용 배달비가 추가로 얹어지면, 주문 한 건당 전체 매출의 20%~30%가 중간 플랫폼의 금고로 자동 흡수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완성된다.
가게 사장님들은 팔면 팔수록 적자를 보는 가혹한 마진 구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을 쥐어짜 내고 있다. 매장 가격보다 배달 앱 메뉴 가격을 더 비싸게 책정하는 ‘이중 가격제’를 도입하거나 배달 팁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비자가 지갑을 닫아버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매장의 매출 절벽을 유발하며 골목상권 자체를 초토화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 제2막: 대형 음식점들의 몰락, ‘직원 고정비’와 ‘임대료’라는 잔인한 족쇄
과거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던 대로변 1층의 30평~50평대 대형 상가들이 최근 연이어 폐업하고 경매·공매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현상은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형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홀 서빙, 카운터, 주방 보조 등 ‘인력 직접 고용’은 고물가·고임금 시대에 자영업자의 목을 죄는 가장 잔인한 족쇄가 되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과 주휴수당, 4대 보험 의무화는 물론, 오토바이 직접 배달 시 발생할 수 있는 중대재해법 및 산재보험 리스크는 영세 자영업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매출의 중심축이 홀이 아닌 배달 앱 화면 안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매장들은 매달 수백만 원 단위의 높은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텅 빈 홀을 지키는 직원들의 고정 인건비를 고스란히 지출해야 한다. 매출은 급감하는데 숨만 쉬어도 나가는 이중 고정비 폭탄을 버티지 못한 대형 매장 사장님들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대로변 대형 상가들은 급격한 자산가치 하락과 함께 경매장으로 직행하고 있다.
■ 제3막: 5평짜리 이면도로 소형 상가의 화려한 비상과 은퇴 세대를 위한 제언
반면, 가시성이 떨어지는 골목 안쪽 이면도로나 권리금이 없는 5평~10평 남짓한 소형 상가는 품귀 현상을 빚으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배달 전문 매장이나 공유 주방들은 홀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사장님 혼자, 혹은 부부끼리 조리에만 집중하고 배달은 건당 수수료를 지불하는 대행 라이더에게 위탁한다.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여 그릇 회수에 드는 인건비와 시간적 리스크마저 원천 차단했다. 고정 임대료와 인건비를 극단적으로 제로(0)에 가깝게 세팅함으로써, 플랫폼 수수료 폭탄 속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살아남는 ‘실속형 강소(强小) 상가’의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이제 “상가는 무조건 대로변 1층 대형 평수가 정답”이라는 과거의 낡은 공식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은퇴 후 안정적인 월세 수입을 목적으로 상가 경매나 분양 시장을 기웃거리는 노후 투자자라면, 이제는 대형 평수의 환상에서 벗어나 임차인이 고정비를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실속형 소형 상가’와 배달 동선이 최적화된 ‘입지적 가성비’에 철저히 초점을 맞춰야만 가혹한 시장 변화 속에서 소중한 노후 자산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전문 칼럼니스트 임정빈
임정빈(천살) 칼럼니스트는 부동산 경매 실무 분석 전문가이자 천살의 부동산 경매 대표로 활동 하고 있다. 5년의 병상 생활 동안 갈고닦은 정밀한 리스크 분석법을 바탕으로 초보 투자자들을 위 한 실무 가이드를 제공하며, 장애인 복지와 부동산 기술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다.
[본 칼럼은 부동산·시사 전문지 '슬로우라이프 뉴스(slow-life.news)'의 기획 특별 칼럼으로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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