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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윤달(閏月)의 의미
윤달(閏月)은 태양과 달의 시간이 어긋나는 것을 맞추기 위한 보정의 달이다. 음력은 달의 주기인 약 29.5일을 기준으로 한 달을 계산한다. 이 때문에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는 계절과는 해마다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약 2~3년에 한 번씩 한 달을 더 두는데, 이것이 윤달이다. 윤달은 시간의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역법상의 장치이며 태음태양력의 오차를 보정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민간에서 윤달을 단순한 역법의 문제가 아닌 특별한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을 덧붙여 넣은 달이라는 이유로 ‘시간이 잠시 멈춘 달’이라 여기기도 하였고, 묘를 이장하거나 집을 수리하는 등 큰일을 하여도 신(神)이 간섭하지 않아 탈이 적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이다.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심리적으로 부담이 적은 시기를 필요로 하였고, 윤달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음택이든 양택이든 증축과 개축, 신축을 할 때 반드시 좌와 향(坐向)을 살핀다. 당해 연도의 살(煞)이 어느 방향에 머무는지 검토한 후, 결격사유가 없다면 윤달이나 한식과 같은 시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청명·한식은 깨끗하고 맑은 봄기운이 안정된 날로 해석되며, 윤달 또한 여러 금기가 완화되는 시기로 받아들여졌다.
풍수는 특정 시기 하나만으로 성패를 판단하지 않는다.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풍수적으로 수십 가지 요소를 점검하여야 한다. 입지와 방향, 수세와 산세, 주변 환경과 지세의 흐름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면 그만큼 균형은 흔들리게 된다.
과거 번성했던 한 고찰 터에 건물을 신축한 사례가 있었다. 옛 절터라는 이유만으로 건물을 세웠지만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계곡을 메워 신축했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되기도 했다. 옛 명당이라는 이름이나 눈앞의 편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곡은 물이 흐르는 자연의 길이며, 그 이치를 거스른 건축물은 결국 자연의 저항을 받게 된다.
삶은 정밀(精密)함에 기반을 두고 살아가지만, 이치는 그보다 훨씬 더 정미(精微)한 곳에 근본을 두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관계가 더 중요할 때가 있으며, 하나의 현상보다 전체의 조화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좋은 터를 찾았다는 것은 수십 단계 절차 가운데 시작에 불과하다. 보석에 비유하면 원석을 발견한 것과 같다. 원석을 다듬고 가치를 완성하는 과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거주하던 집의 증축과 개축, 사업체의 이전과 이후에 기운의 쇠락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모든 결과를 풍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삶의 터전을 옮기고 공간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 사람의 심리와 행동, 생활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은 사업의 시작이 빠르고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다. 경험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실패도 성공도 짧은 시간 안에 확인된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이치(理致)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검토와 성찰이다. 우리는 어디엔가 집을 짓고 사업체를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약간의 고민과 검증을 거치는 일은 삶의 지혜라 할 수 있다.
정치계와 경제계에서 지금도 풍수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재벌가와 명문가의 번영에 숨은 원인을 궁금해한다. 성공을 땅의 이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생활환경과 공간의 질서가 한 가문의 흥망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 공간에도 저마다의 품격과 기운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재벌가들은 어떤 이론이든 섣불리 배척하지 않는다. 사금을 얻기 위해 수많은 모래를 뒤집듯, 가치가 있다면 취하고, 없다면 버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탐구하는 자세다.
윤달은 하늘이 내린 신비한 달이 아니라 시간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인간이 만든 지혜의 장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시간 속에서 삶을 돌아보고 조상을 공경하며,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다시 살펴보는 의미를 부여해 왔다.
풍수도 다르지 않다. 그 본질은 길흉의 예언에 있지 않고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데 있다. 윤달이 우리에게 전하는 뜻은 어쩌면 단순하다. 삶이 어긋날 때는 더 빨리 가려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흐름을 살피라는 것,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자신을 다시 맞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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