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대한항공, 국제선·공항 라운지 동반 세계 3위…프리미엄 서비스 존재감

[조용우 환경칼럼] 슬세권과 15분 도시

도시, 일상의 완결성을 제공하는 공간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생태문명전환포럼 대표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 생태문명전환포럼 대표

경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역세권? 아니 슬세권! : 일상이 완결되는 보행 생활권’ 보고서에 의하면 2025년 경기도 사회조사 결과 도민들이 주거지를 선택할 때 ‘편의시설’을 중요하게 여기는 비율이 18.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퇴근 이후 가벼운 슬리퍼 차림으로 집 앞 편의점에서 야식을 사고, 단골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여유를 즐기는 일상, 이른바 ‘슬세권’(슬리퍼 생활권)이 경기도민의 주거 선택을 좌우하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결과다. 과거 지하철역 거리가 집값 척도였다면, 이제는 내 집 앞 10분 거리 안 일상이 얼마나 완벽하게 해결되느냐가 ‘살기 좋은 동네’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슬세권’은 단순한 생활 트렌드가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 도시 경쟁력은 지하철역과 업무지구 접근성으로 평가되었지만, 이제는 집 앞 10분 안에서 삶이 얼마나 완결되는지가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곧 도시의 중심이 “이동”에서 “생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흐름은 프랑스 파리에서 제안된 15분 도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15분 도시는 주거·일자리·교육·의료·여가 등 필수 기능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해결하는 도시 모델이다. 슬세권이 개인의 체감 생활권이라면, 15분 도시는 이를 도시 전체 설계 원리로 확장한 개념이다.

두 개념을 결합하면, 미래 도시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첫째, ‘압축된 분산 도시’로의 전환이다. 기존 대도시는 중심 업무지구에 기능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였다. 그 결과 장거리 통근, 교통 혼잡, 환경 오염이 일상화되었다. 반면 슬세권과 15분 도시는 기능을 여러 생활권으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시민들이 굳이 도시를 가로지르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탄소 배출 감소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구조적 효과를 낳는다.

둘째, ‘보행 중심 도시’로의 재편이다. 기사에서 제시된 것처럼, 슬세권 정책은 단순히 시설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걷고 싶은 거리, 머물고 싶은 골목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 체계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고, 소음과 대기오염을 줄이는 것이 도시 경쟁력이 된다. 이는 단순한 미관 개선이 아니라, 건강·환경·지역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전략이다.

셋째, ‘공공의 역할 재정의’다. 시장 논리에만 맡길 경우, 슬세권은 특정 지역에만 집중되고 격차는 더 벌어진다. 실제 기사에서도 슬세권 지수 격차가 최대 5배까지 벌어졌다. 따라서 공공은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생활서비스 패키지’를 직접 공급하고, 민간이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복지 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의 의미 변화’다. 과거 도시는 생산과 소비의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일상의 완결성’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정의된다. 카페, 공원, 병원, 편의점 같은 소소한 시설들이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는 이유다. 결국 좋은 도시는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도시다.

결론적으로, 슬세권과 15분 도시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빠르게 이동하는 도시가 아니라, 굳이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경쟁과 속도의 도시가 아니라, 삶과 관계의 도시다. 앞으로의 도시 정책은 더 많은 것을 짓는 데서 벗어나, 더 가까운 곳에 삶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민의 일상을 회복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도시 혁신이다.

조연묵 기자기자의 다른 기사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