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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7]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소리로 빚어낸 인류애의 낙원

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 이안 페이지와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도쿄 분카 카이칸 메인홀(4/12)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7

우에노 공원의 벚꽃이 흩날리는 도쿄의 봄, 분카 카이칸 메인홀에서 마주한 요제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Die Jahreszeiten)는 계절의 순환을 넘어 생의 황혼에서 하이든이 도달한 인류애적 낙원을 향한 숭고한 여정이었다. 당초 예정되었던 이보르 볼튼대신 명장 이안 페이지(Ian Page)가 연주를 지휘봉을 잡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도쿄-하루사이 합창 시리즈를 빛낸 지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연주를 낳았다.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Taira Tairadate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Taira Tairadate

이안 페이지의 명료한 리드는 도입부인 ‘봄’의 서곡에서부터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과도한 비브라토를 걷어낸 간결한 형식미와 담백한 리드는 하이든이 의도한 고전적 미학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TMSO)라는 현대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영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악기 연주법에서 도입한 날카로운 아티큘레이션을 이식해 악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하이든의 음악은 둔중함을 벗어던지고 18세기 특유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적인 야성을 되찾았다.

이번 연주의 백미는 하이든이 심어 놓은 음향적 묘사들이 페이지의 통찰을 통해 ‘청각적 양각(陽刻)’으로 되살아난 지점이었다. ‘여름’의 정적을 깨고 몰아치는 폭풍우 장면에서 TMSO의 금관과 팀파니는 단순한 음량의 폭발이 아닌, 대기를 찢는 듯한 음향을 만들어내며 객석을 감동시켰다. 특히 오보에(수석 주자 료코 야마다는 시종 놀라운 연주력을 들려주었는데, 연주를 마치고 이안 페이지가 가장 먼저 일으켜 세울 정도로 활약이 대단했다)가 그려내는 자연 묘사의 디테일은 감탄을 자아냈고, 지휘자가 구축한 투명한 텍스처 위에서 목관 앙상블이 보여준 묘사력은 실로 독보적이었다.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Naoya Ikegami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Naoya Ikegami

이어지는 ‘가을’에서 울려 퍼진 호른의 외침은 야성적인 활력으로 가득 찼으며, 사냥 장면의 황금빛 역동성은 분카 카이칸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반면 ‘겨울’의 안개 낀 고요함은 소멸을 앞둔 고독을 투영하듯 시리고도 아름다웠다. 페이지는 이러한 묘사를 계절이라는 무대 위에 놓인 인간 희로애락의 언어로 치환했다.

이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성악가들의 활약 역시 연주의 성공을 견인했다. 특히 테너 마우로 페터(Mauro Peter)는 훌륭한 리트 가수로서의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의 루카스는 소박한 농촌의 서사를 노래하면서도, 가사 하나하나에 실린 섬세한 뉘앙스와 우아한 프레이징을 통해 하이든의 선율에 귀족적인 품격을 더했다. 차분하면서도 명징한 그의 발성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서사적 대목마다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하이든 음악 특유의 순수함을 완벽하게 청각화했다.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Taira Tairadate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 ©Taira Tairadate

베이스 타레크 나즈미(Tareq Nazmi)의 시몬은 대지의 근엄함과 가문의 수장으로서의 무게감을 동시에 지탱했다. 나즈미의 깊고 풍부한 저음은 이안 페이지가 구축한 투명한 오케스트레이션 위에서 단단한 뿌리 역할을 하며 극의 음악적 균형을 잡았다. 특히 그는 철학적인 깊이를 노래에 담아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돌아보게 했다. 두 남성 가수의 절제된 감정 표현과 깊이 있는 해석은 세속적 일상을 다루는 이 작품에 역설적으로 가장 종교적인 숭고함을 입혔다.

여기에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란트샤머(Christina Landschamer)의 청아한 음색은 자칫 세속적일 수 있는 일상의 풍경에 진짜 종교음악 같은 숭고한 광휘를 부여했다. 세 명의 독창자는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가사 전달의 명료함을 살려내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으며, 이들이 이룬 앙상블은 하이든이 꿈꿨던 인류애적 화합을 구현했다.

도쿄 오페라 싱어즈(Tokyo Opera Singers)의 밀도 높은 합창은 농민들의 순박한 기쁨부터 창조주를 향한 장엄한 찬미까지, 이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최후의 인장이었다. 연주의 마지막, 인생의 종언과 내세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영생의 찬가와 함께 모든 소리가 잦아들었을 때의 정적은 소리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도쿄의 봄은 그렇게 소리로 지어진 가장 아름다운 사계를 얻으며 비로소 완성되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_공연장 전경 @Koji Iida
2026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_공연장 전경 @Koji I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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