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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5,000억 달러의 시대, FY2027 미국 국방예산안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전쟁부」 예산의 구조적 전환과 한국 국방재정에의 시사점

주찬미 | 평택대학교 한미동맹안보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서울대학교 행정학박사육군 중령 예편(육사 60기)
주찬미 | 평택대학교 한미동맹안보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서울대학교 행정학박사육군 중령 예편(육사 60기)

전례 없는 규모, 전례 없는 구조
2026년 4월,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FY2027 연방예산안을 펼치면 숫자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쟁부(Department of War, DOW)」— 기존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가 이름을 바꾼 — 의 총 예산 자원이 1조 5,000억 달러, 한화로 약 2,100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제정(enacted) 수준인 약 1조 590억 달러에서 4,410억 달러(44%)가 뛰었다.
규모 자체도 놀랍지만, 이 예산안의 진짜 이야기는 금액 뒤에 숨어 있다. 미국 국방예산은 수십 년간 의회가 매년 세출법(Appropriation Act)을 통해 승인하는 재량 지출(Discretionary Spending)로만 편성되어 왔다. 그런데 FY2027 예산안은 기본 재량 예산 권한(base discretionary budget authority) 1조 1,540억 달러 위에, 3,500억 달러(약 490조 원)의 신규 의무 지출(mandatory spending)을 한 겹 더 얹었다. 국방예산 편성 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방 분야에 '의무 지출'이 등장한 이유
미국 연방예산에서 재량 지출과 의무 지출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재량 지출은 의회가 매년 세출 절차를 통해 금액을 결정하고, 의무 지출은 수권법(Authorization Act)이 정한 자격 규정에 따라 지출이 자동 발생한다. 사회보장(Social Security)이나 메디케어(Medicare)처럼 법률만 존재하면 의회의 연례 심의 없이도 돈이 나가는 구조다.

국방비에 이 메커니즘이 적용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근거는 2025년에 제정된 「근로 가정 감세법(Working Families Tax Cut Act, WFTC, PL 119-21)」이다. 이 법은 조정 절차(reconciliation process)를 통해 상원에서 과반수만으로 통과되었는데, 그 안에 전쟁부와 NNSA(국가핵안보국)에 1,515억 달러의 다년도 의무 예산이 담겼다. 일반 세출법이 상원에서 60표라는 초당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조정 절차는 51표면 충분하다. 행정부는 이 정치적 기법을 활용해 의회 내 교착을 우회한 셈이다.

FY2027 예산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WFTC와는 별도로 3,500억 달러의 신규 의무 지출을 의회에 요구하면서,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을 연례 세출법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하려 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획득예산(Procurement, P-1)만 해도 재량 2,770억 달러에 의무 1,572억 달러가 더해져 총 4,342억 달러(약 608조 원)다. 재량 예산의 57%에 해당하는 금액이 의무 지출로 별도 편성된 것이다. 연구·개발·시험·평가예산(RDT&E)은 재량 2,199억 달러 + 의무 1,249억 달러 = 총 3,448억 달러, 운영유지예산(O&M)는 재량 3,826억 달러 + 의무 482억 달러 = 총 4,308억 달러에 이른다.


3,500억 달러는 어디로 가는가
이 거대한 의무 지출이 향하는 곳은 뚜렷하다. 가장 큰 몫은 핵심 탄약(Critical Munitions)의 대량 조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탄약 소모의 속도는 미국으로 하여금 12개 핵심 탄약의 신속 조달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했다. P-1 데이터에서 이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항목이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다. 재량 9억 700만 달러에 의무 105억 2,800만 달러가 얹어져, FY2027 THAAD 예산은 총 114억 3,500만 달러(약 1조 6,000억 원)로 급증했다.

방위산업기반(Defense Industrial Base)에 대한 투자도 의무 지출의 핵심 용처다. 예산안에는  국방비축기금(National Defense Stockpile)에만 180억 달러(약 25조 원)의 의무 예산이 편성되었다. 조선소 확충, 탄약 생산라인 증설, 핵심 부품 공급망 강화—이 모든 것이 연례 세출법의 변동성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기술 성숙도가 아직 불확실한 신기술 획득에도 의무 지출이 투입된다. 예산안은 이를 '성숙 중인 기술에 유연성을 부여하고, 신규 참여자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포트폴리오 방식의 획득'이라고 표현한다. AI 무인전투기(CCA)처럼 설계가 확정되기도 전에 양산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프로그램에, 연례 세출 심의의 불확실성은 치명적이다. 의무 지출의 다년도·유연성 특성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함정 건조도 빼놓을 수 없다. 658억 달러(약 92조 원)의 조선 예산으로 전투함 18척과 비전투함 16척 조달을 요구하면서, 'Trump급 전함(battleship)'과 차세대 호위함을 포함하는 'Golden Fleet' 구상까지 등장했다. Columbia급·Virginia급 잠수함 조달은 유지·확대된다.


그 밖의 투자 우선순위
의무 지출 구조 외에도 FY2027 예산안의 투자 지형은 뚜렷한 방향성을 보인다. Golden Dome 미사일방어체계는 행정명령(E.O. 14186)에 근거한 차세대 본토 방어 개념으로, 우주기반 센서와 요격체, 다층방어 기반 기술에 본격적인 자금이 투입된다. F-47 6세대 전투기는 2028년 초도비행을 목표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F-35는 공군형 기준 재량 약 29억 달러 + 의무 약 23억 달러 = 총 52억 8,000만 달러(약 7,400억 원)로 양산이 병행된다. 무인·대무인 체계(UAS/C-UAS)에는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가 집중되고, NNSA 예산 328억 달러(FY2026 대비 12% 증가)로 핵 전력 현대화가 추진된다. 군인 보수도 E-5 이하 7%, E-6~O-3 6%, O-4 이상 5%의 차등 인상으로 통상 수준을 크게 웃돈다.


한국 관련 예산: 군산기지와 THAAD
군사건설(MILCON)에는 한국 군산공군기지(Kunsan Air Base) 외래진료센터 대체 건설에 6,500만 달러(약 910억 원)가 편성되어 있다. FY2025에 6,494만 달러가 승인된 후속 사업으로, 주한미군 의료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보여준다.

더 주목할 것은 앞서 언급한 THAAD 예산의 급증이다. 총 114억 달러는 요격탄의 대량 조달을 예고하며, 미국 내 THAAD 생산 능력이 확충되면 한국의 추가 도입 가능성에도 긍정적 환경이 조성된다. 대외군사금융(FMF)이 보조금에서 차관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은 FMF의 직접 수혜국은 아니지만, 방산 수출 시 미국의 대외군사판매(FMS) 체계와 경쟁·협력하는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재정의 현실: 조여드는 재정 공간
이 시점에서 한국의 재정 상황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6년도 중앙정부 총지출은 728조 원으로 전년 본예산(673.3조 원) 대비 8.1% 증가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본예산으로, 2022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문제는 이 확장 재정의 상당 부분이 의무 지출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다. 2025년 사회복지 분야 예산만 248.7조 원으로 총지출의 36.4%를 차지하며 12대 분야 중 가장 큰 비중이다.

국가채무의 궤적은 더욱 가파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5년 49.1%에서 2026년 51.6%로,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에 따르면 이 비율은 2027년 53.8%, 2028년 56.2%를 거쳐 2029년에는 58%에 이른다. 국가채무 절대액도 2025년 1,303.6조 원에서 2029년 1,789조 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적자성 채무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된다.

이 구조에서 국방비를 위한 재정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의무 지출의 연평균 증가율(6.5%)이 총지출 증가율(5.5%)을 상회한다. 의무 지출이 빠르게 팽창하는 가운데 재량 지출의 여지가 줄어들면, 국방비—재량 지출 항목인—의 증가 여력이 구조적으로 압박받는다. 미국과 동일한 딜레마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WFTC에서 읽어야 할 것
한국과 미국의 예산 체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예산안 법률주의—세출법이 법률로 제정되어야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고, 한국은 예산 비법률주의—정부 편성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확정하면 곧바로 집행 근거가 되는 구조—를 따른다. 한국에는 계속비(국가재정법 제23조)와 장기계속계약(국가계약법 제21조)이 있어, KF-21이나 경항공모함 같은 대형 방위력개선사업이 사실상 다년도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매년 세출법 심의에 묶이는 미국보다 한국이 오히려 유연한 셈이다.

그러나 WFTC가 보여주는 혁신의 본질은 다년도 예산 확보 그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국방 투자의 규모와 우선순위를 정치적 변동으로부터 일정 부분 격리(insulate)시키려는 제도적 시도에 있다. 한국도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 사이에서 국방비의 구성과 우선순위가 적잖이 흔들려 왔다. 계속비로 승인된 사업이라 해도, 연부액 조정이나 사업 재검토를 통해 실질적으로 축소·지연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주목해야 할 벤치마킹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방위산업기반 투자를 무기체계 조달과 분리하여 별도의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려는 WFTC의 접근법이다. 한국의 방산 수출이 급성장하는 시점에서, 생산라인 확충, 시험평가 시설, 핵심 부품 국산화 같은 산업기반 투자는 당해연도 획득 예산과 뒤섞여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재원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자금 흐름 안에 있다. K9, K2, 천궁-II 등 주요 수출 품목은 대부분 정부 출연 R&D로 개발되었고, 업체는 해당 기술을 수출에 활용할 때 정부에 기술료(royalty)를 납부한다. 현재 이 기술료가 일반회계 세입으로 흡수되어 방위산업 재투자와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데, 이를 방위산업발전기금(가칭)에 직접 적립하도록 귀속처를 바꾸면 기업에 새로운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안정적 재원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폴란드·사우디아라비아 사례에서 보듯 G2G(정부간거래) 방식의 수출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이행 보증, 군수지원 약정, 기술이전 관리 등 실질적 중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미국 FMS의 행정 수수료(계약액의 약 3.5%) 모델을 참고하여 계약 금액의 일정 비율을 G2G 수수료로 제도화하고, 그 수익을 산업기반 투자에 환류시키는 구조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AI 무인체계나 사이버 능력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에 대한 신속획득(rapid acquisition) 전용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미국이 의무 지출의 유연성을 활용해 기술 성숙도가 불확실한 프로그램에도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은, 한국의 방위사업법상 엄격한 획득 절차와 대비된다. 긴급소요 제도만으로는 규모와 범위가 제한적이다.

탄약 비축의 재원 분리도 빼놓을 수 없다. WFTC와 FY2027 예산 모두에서 핵심 탄약의 대량 조달이 최우선 과제로 부각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 교훈이다. 한반도 유사시 탄약 소모량 대비 비축량의 적정성은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다. 탄약 비축을 별도 재원이나 법적 최소 보장 수준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은,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1조 5,000억 달러가 던지는 질문
물론 FY2027 예산안은 대통령의 요구안에 불과하며, 의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조정을 겪을 것이다. 3,500억 달러의 추가 의무 지출 요구, 비국방 분야 10% 일괄 삭감, 다수 사회 프로그램의 폐지 제안은 의회의 초당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 그러나 이 예산안이 가리키는 방향성—국방 투자를 정치적 변동에서 격리하고, 방위산업기반에 별도 재원을 확보하며, 신기술 획득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은 예산안의 운명과 무관하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한국의 2026년 국가채무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이 시점에서, 의무 지출은 매년 6.5%씩 팽창하고 재량 지출의 여지는 좁아지고 있다. 국방비가 재량 지출 항목으로 남아 있는 한, 복지와 국방 사이의 제로섬 압력은 갈수록 거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국방예산의 일부를 의무 지출로 전환하여 이 압력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같은 구조적 딜레마에 놓인 한국에게 하나의 실험이자 거울이다.

미국의 WFTC 실험이 성공하든 좌절하든, 그것이 제기하는 질문은 한국에도 똑같이 유효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국방 투자의 제도적 기반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이 칼럼은 OMB FY2027 Budget, DOD Budget Exhibits(P-1, R-1, O-1, M-1, C-1, RF-1), Technical Supplement to the 2026 Budget: DOD Appendix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한국 재정 데이터는 기획재정부 「2026년도 예산안」, 국회예산정책처 「2026년도 예산안 검토보고」, e-나라지표를 참고하였습니다.
※ 미국 예산 용어는 「미국 국방예산의 이해」(주찬미, 2023)의 용어 체계를 따랐습니다. 원화 환산은 1달러 = 1,400원 기준 개략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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