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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시사칼럼] 이 땅에 정의는 살아있는가

고(古) 김창민 감독의 죽음에 부쳐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다.
그것도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무참한 폭행 끝에.

고(故) 김창민 감독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묻는, 잔혹한 질문이다.

응급실에 실려 온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얼굴 곳곳에 남은 검붉은 멍, 귀 안쪽에 고인 피, 의식을 잃은 채 남아 있던 눈물. 그 장면은 단순한 ‘폭행’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상 살인이었다.

그런데도 가해자들은 구속되지 않았다. 법원은 “거주지가 일정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단은 과연 상식적인가.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집단 폭행으로 인해.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거리로 돌아갔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이후다.
가해자 중 한 명은 반성은커녕, ‘양아치’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가사 속에는 자기반성도, 죄책감도 없다. 오히려 폭력을 미화하는 듯한 태도마저 읽힌다.

이쯤 되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에서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피해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가해자는 일상을 살고, 음악을 내고, 거리를 활보한다.

유가족은 공포 속에 살아간다.
이것이 정의인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억울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그 기본이 흔들린다면, 법치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완 수사’가 아니다.
사건의 본질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 사건은 우발적 다툼이 아니다.
여러 명이 가담한 집단 폭행이며, 그 결과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수사기관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가담자 전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의 경중을 따져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법원 역시 응답해야 한다.
도주의 우려만이 구속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위험성과 범죄의 중대성, 그리고 피해 회복의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는 분명한 신호를 받게 된다.

폭력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인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침해한 대가는 반드시 치른다는 원칙인가.

지금은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다.

고 김창민 감독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정의는 저절로 살아 있지 않다.
지키고, 세우고, 때로는 다시 만들어야만 존재한다.

이 땅에 정의는 살아 있는가.
그 질문에 우리는, 반드시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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