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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굴레 시리즈2) “NPL, 빚에도 가격이 있다”

​(AI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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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 주성진 기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빚에는 하나의 가격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1억원을 빌렸으면 1억원을 갚아야 한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채권의 가격은 반드시 액면금액과 같지 않다. 특히 연체가 발생하고 정상적인 상환이 어려워진 부실채권, 이른바 NPL 시장에 들어서면 채권에는 새로운 가격이 붙는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가 개인에게 1억원을 대출했다고 하자. 처음에는 1억원의 대출채권이 금융회사의 정상적인 자산이다. 그러나 채무자가 장기간 돈을 갚지 못하면 금융회사는 해당 채권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이때 금융회사는 채권을 전문적인 NPL 투자회사에 매각할 수 있다. 장부상 채권금액은 1억원이지만 실제 매각가격은 채권의 회수 가능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NPL 투자자가 보는 것은 채권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채무자가 실제로 얼마를 갚을 수 있는지,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담보가 있다면 실제 가치가 얼마인지, 법적 절차를 진행했을 때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채권 회수에 1년이 걸리는지 5년이 걸리는지도 중요하다. 같은 1억원을 회수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투자금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결국 NPL 시장은 ‘빚을 싸게 사는 시장’이 아니라 ‘회수 가능성을 가격으로 계산하는 시장’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장기간 관리해야 할 부실자산을 정리해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할인된 가격으로 채권을 매입해 회수 과정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예상보다 회수가 늦어지거나 채무자의 재산이 부족하면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국내 NPL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부동산시장 변화, 자영업자의 상환 부담 등이 이어지면서 금융권의 부실채권 관리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NPL 규모는 2026년 1분기 17조7,000억원까지 증가했다. 금융회사가 부실채권을 시장에 내놓을수록 이를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매입하는 투자회사들의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채무 NPL 시장에는 기업 부실채권과 다른 특징이 있다. 기업채권은 기업의 재무제표와 담보, 사업가치 등을 중심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개인채권은 채무자의 소득과 생활환경, 재산, 가족관계, 개인회생이나 파산 가능성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개인채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훨씬 복잡하다.

또한 채권을 매입한 투자자가 높은 회수율을 얻는 것과 채무자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는 것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최근 개인채무 시장에서는 단순한 추심보다 채무조정이 중요한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리하게 회수를 시도하기보다 현실적인 상환계획을 만들어 채무자가 지속적으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회수율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NPL 시장의 경쟁력은 자금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채권의 정확한 가치평가, 회수 가능성 분석, 법률적 판단, 데이터 활용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AI가 채무자의 상환 가능성과 예상 회수율을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개인채권의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빚에는 숫자가 있지만 그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 NPL 시장이 단순한 투자시장을 넘어 금융산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채권의 가치뿐 아니라 채무자의 재기 가능성까지 함께 평가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결국 NPL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빚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이 빚에서 실제로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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