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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좋은 터는 자손에 대한 믿음이다
화초의 잎이 무성하여 일부를 잘라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줄기에서 꽃들이 피기 시작하였다. 꽃나무도 세력이 약해지면 꽃을 피워 자손(子孫)의 번식을 유도한다고 하였다. 하물며 사람이야 자손의 번창이 일생일대의 최고의 바람이다.
한 명문 재벌가는 젊은 시절 일 년간 노동의 대가를 들고 풍수적 관점에서 좋은 땅을 찾기 위해 유명한 지관(地官)을 찾았다고 한다. 신중한 시간의 노력 끝에 두 곳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다. 한 곳은 자손이 번창하고, 다른 곳은 자손보다 재물(財物)이 쌓이는 터였다. 선택은 신중했다. 그 시절은 빈곤에 힘들어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자손보다는 재물이 모이는 터를 선택하였다 한다. 지관의 추측대로 재물은 넘쳤지만, 자손이 없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동식물이든 사람이든 좋은 후손을 바라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이다. 옛말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골프이고 하나는 자식이라 하였다. 아무리 많은 부귀(富貴)를 손에 쥐고 있다 하여도 자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기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재력가나 권력가를 중심으로 풍수지리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후계자를 선정할 때도 사주명리(四柱命理)로 기질적 재능을 살피고, 풍수 이론을 접목하여 그 후손의 번창함을 뒷받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는 재벌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바라는 마음이다.
후손의 인문학적 소양과 경영능력을 키우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 더해 음택풍수(陰宅風水)에도 깊은 관심을 둔다. 재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재능과 경쟁력을 갖춘 인물을 길러내고자 한다. 풍수의 길지(吉地)를 찾는 일도 이러한 바람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이론이다.
사람들이 풍수를 찾는 까닭도 삶의 불안을 덜고 마음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삶은 치열해진다. 그러나 세월의 뒤안길에서 많은 부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갈증 날 때 물이 필요하듯 사람에게도 때에 맞는 삶의 만족이 필요하다.
삶은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는 데 있다. 사람들은 상당한 불안을 부귀를 통해 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운을 자연의 기운에서 비롯된다고 믿기도 한다. 노력에 비해 너무 큰 것을 얻으면 우리는 그것을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복(福)을 부르고 선을 행하는 것도 삶의 지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시기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부귀영화를 바란다. 길지에 발을 디디는 것도 노력의 결과이다. 풍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풍수가 가져다줄 부귀를 바라는 것은 마음의 모순이다. 혼란은 삶을 비관하고 인성에 흠집만 낼 뿐이다.
삶에 많은 허물은 재물 앞에 묻혀버린다. 빈자(貧者)는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고, 부자(富者)는 큰 허물도 작게 묻혀버린다. 재물이 가진 현실적인 힘이다. 재물의 묘리는 풍수지리의 실제적 관점 중에 하나다. 땅을 밟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현실적인 삶의 문화다. 이것은 조작할 수 없다. 싫다고 지구를 벗어나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단순하게 살 수도 있다. 생각 없이 물질의 축적에 따라다니는 인생이 뒤늦은 후회를 하게 한다.
결국 사람이 남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재물은 한 시대를 풍요롭게 하지만, 후손은 한 집안의 역사를 이어간다. 풍수가 바라는 것도 후손이 평안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좋은 터는 땅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손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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