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8월, 잘 쉬는 것에 대하여…정선 트라움벨리에서
일과 휴식의 경계가 흐려진 일상, 잠시 업무와 거리를 두고 생각해본 여유의 필요성 쉬는 날까지 채우려 했던 시간…아무 일정 없는 하루가 전해준 것
8월, 정선 트라움벨리에 와 있다. 휴가라고 부르기에는 노트북도 가져왔고 전화도 계속 받고 있으니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낮 동안 처리해야 할 업무를 마치고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하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낮의 정선은 여전히 덥지만 해가 지고 나면 도시에서 보내던 여름밤과는 분위기가 제법 다르다. 주변은 조용해졌고, 평소 같으면 아직 무언가를 하고 있었을 시간에 모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밤을 보내고 있다.
하얀뿔미디어를 운영한 뒤로 서두를 일 없는 시간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언론홍보 업무는 정해진 시간 원고만 작성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고객에게 자료가 도착하면 확인해야 하고,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다시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기사 접수 및 송출 일정도 수시로 확인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카카오톡 알림이 울리면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 가운데 하나는 퇴근의 개념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를 나오면 적어도 물리적으로 일터와 거리가 생겼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휴대전화와 노트북만 있으면 정선 트라움벨리에서도 하얀뿔미디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선에 도착해서도 처음 한 행동은 비슷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진행 중인 업무를 살폈다. 처리할 것이 없으면 괜히 메일을 열어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 생겼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아마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루를 비우면 매출이 줄 것 같고, 연락을 늦게 확인하면 거래처에 문제가 생길 것 같고,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휴가를 가면서도 노트북을 챙긴다. 몸은 다른 지역에 있는데 업무 방식은 사무실에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정선 트라움벨리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다. 내가 몇 시간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고 회사가 멈추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직접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 대표가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회사가 제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쉬는 날에도 업무를 찾게 되고, 일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하얀뿔미디어 역시 매일 여러 일정이 움직인다. 원고 작성부터 수정, 고객 응대, 기사 송출 확인까지 하나의 업무가 끝나기 전에 다른 업무가 시작되는 날도 많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많이 일하는 것’과 ‘잘 일하는 것’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둘은 생각보다 달랐다.
피곤한 상태에서 한 시간 동안 붙잡고 있던 원고를 다음 날 아침 10분 만에 정리한 적도 많았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결과물의 품질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억지로 일을 이어가면 수정할 부분이 늘어나 다음 날 같은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이번 정선 일정에서는 일부러 빈 시간을 남겨두고 있다. 정선 트라움벨리에 왔다고 주변 관광지를 빠짐없이 찾아다니지도 않고 하루 일정을 촘촘하게 정하지도 않았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앉아 있고, 걷고 싶으면 주변을 걷는다. 처음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며칠 지나니 오히려 이런 방식이 휴가에 더 가까웠다.
우리는 쉬는 날마저 성실하게 보내려는 경향이 있다. 여행을 가면 유명한 곳 몇 군데는 방문해야 할 것 같고, 맛있는 것도 찾아 먹어야 하며 사진으로 남길 만한 장면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찬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와 “휴가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 낯설지 않다.
꼭 그래야 할까.
정선 트라움벨리에서 보내고 있는 이번 여름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거창한 사건이 없다. 대신 평소보다 밥을 천천히 먹었고 산을 오래 바라봤다. 휴대전화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한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기사로 쓸 만한 특별한 사건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런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하얀뿔미디어를 운영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회사를 짧은 시간 크게 만드는 것보다는 오래 운영하는 것이다. 오래 운영하려면 매출이나 고객만 관리해서는 안 된다곤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생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대표 역시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휴식을 일이 끝난 뒤 남는 시간에 하는 것으로 두지 않으려 한다. 일정표에 빈칸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하루를 쉬었다고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하다.
정선에서 돌아가면 다시 평소 생활이 시작된다. 고객에게 연락이 올 것이고 새로운 원고를 작성할 것이며 마감 시간을 확인하면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마 지금처럼 느긋하게 산을 바라볼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정선 트라움벨리에서 확인한 사실 하나는 가지고 돌아가려고 한다.
대표가 잠깐 쉰다고 회사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앞으로 하얀뿔미디어를 어떻게 운영해야 오래 일할 수 있을지 이전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휴가까지 와서 얻은 결론치고는 꽤 소박하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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