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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풍수는 생사지법(生死之法)이다
사람의 마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자연의 이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있기에 마음의 존재를 짐작하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연에 이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죽음은 생각의 끝을 이해하게 하고, 가을에 풀잎의 마르는 모습을 보고 자연의 상충살(相沖煞)을 이해한다. 보이지 않는 질서는 삶 속에서 반복된다. 사람의 운명도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함께 움직인다.
사람에게 대운(大運)이 온다는 것은 흥망성쇠가 반복됨을 뜻한다. 자연의 살(煞)이 동서남북으로 순환하니 상생상극(相生相剋)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며, 자연의 모든 것이 돌아간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읽고 머물 자리를 찾는 것이다. 철학은 보이지 않는 원리를 통해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자연의 이치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풍수도 맥락을 같이한다.
철학이 마음에 관계를 묻는 학문이라면, 풍수는 그 관계가 머무는 공간을 살피는 학문이다. 인간은 그 공간에서 삶을 세밀하고 반복적으로 살펴왔다. 과거를 보고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짐작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지키고 온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연에 순응하고 생각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여 삶의 안녕을 지키는 데 있다. 삶의 모든 일에 '왜'만 묻기보다,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자연의 질서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물(萬物)은 성장하며 움직인다. 그 근본적 뿌리는 고요함에 있다. 나무의 잎이 흔들려도 뿌리는 단단히 땅을 붙들고 있다. 이치도 비어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요함이야말로 마음의 근본이다. 움직임은 변화의 모습이고, 고요함은 지혜의 근원이다. 겉으로 드러난 형상보다 그 안의 본질을 살피는 일이 풍수지리의 역할이다.
평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방을 살펴야 한다. 겨울에는 양지를 찾고 여름에는 음지를 찾으며, 생명을 살리는 물을 가까이하는 것이 생존의 기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조상들은 이러한 삶의 지혜를 모아 풍수지리라는 체계를 만들었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풍수도 자연의 질서를 삶 속에 적용한 지혜인 것이다.
풍수를 음양론(陰陽論)이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겨울에는 양기(陽氣)가 필요하고 여름에는 음기(陰氣)가 필요하다. 때에 맞는 기운을 선택하는 것이 곧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삶의 안정과 복을 누릴 가능성이 커진다. 눈앞에도 이치가 있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삶의 이치가 있다. 보석은 금고가 지키고 몸은 마음이 지키듯, 우리의 흥망성쇠 또한 자연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좋은 터란 특별한 곳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이 어울리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인체의 팔다리도 관절이 꺾이는 곳에 물이 차오르듯, 산야 또한 굽어지는 곳에 물이 모이고 샘이 솟는다. 산봉우리가 둥글면 그 아래의 지세(地勢)도 둥글게 기운을 품는 경우가 많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형상은 모습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이 만들어낸 기운의 산물이다. 풍수는 그 속에서 생명의 흐름을 알려고 한다. 비 오고 눈이 내리는 것을 미신이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가. 나에게 부귀(富貴)를 안겨주면 행운(幸運)이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헛된 이론이라 한다. 삶이 자연에 근본을 두듯이 조상의 묘도 자연과 동화되어 그 기운을 후손에게 이어준다고 믿어 왔다. 살아 계실 때나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만큼이나 넓다고 한다. 그곳에 재물을 꽉 채우려 하니 힘듦이 당연하다. 그 자리에 선한 마음을 채우면 힘도 들지 않고 내면을 진실(眞實)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도 명당이 있다. 그래서 마음을 깨우친 사람을 성현(聖賢)이라 칭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 찾지 못하니 등잔불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생긴 것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찾는 명당은 땅만이 아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과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마음까지 함께 살피는 것이 풍수의 본질이다.
생각 없이 베푼 행동 속에서 재물의 길이 열리고, 욕심 없는 발걸음에 좋은 터를 만난다. 선한 마음은 어디에 있든 그곳을 명당으로 만든다. 우주가 쉼 없이 움직이고 마음 또한 멈추지 않듯, 부귀영화 역시 돌고 돌아 사람을 찾아온다. 부귀는 때가 왔을 때 알아보고 붙잡을 줄 알아야 빈곤을 피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찾는 답은 늘 눈앞을 지나가고 있다. 다만 욕심과 두려움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풍수는 단지 길한 땅을 찾는 학문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자연의 질서 안에서 이해하고, 사람이 머물 자리와 마음의 자리를 함께 살피는 생사지법(生死之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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