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천살의 부동산 칼럼] 화려한 주가 뒤에 숨은 실물 경제의 비극, ‘연쇄 부도’의 서막인가
청년층 사기·분양권 대란·좀비 기업의 속출, 위기의 대한민국 실물 경제를 진단하다
최근 대한민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유례없는 호황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전광판 뒤편,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실물 경제의 바닥은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중소 부동산업과 임대업의 연체율이 1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산업단지의 가동률은 눈에 띄게 꺾였다. 풍요 속의 빈곤이자, 전형적인 외화내빈의 형국이다. 매일 같이 파산과 회생의 최전선에서 경제적 유해를 목격하는 전문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붕괴의 징후들을 심층 진단해 본다.
청년층을 삼킨 '사기 공화국'의 민낯
현재 법원에 접수되는 개인회생 신청자 중 2030 세대의 비중이 무려 절반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가 되어야 할 청년들이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빚더미와 함께 끼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경로는 지독할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취약한 경제적 상황을 파고드는 악성 사기 범죄다. 신용 등급이 낮아 금융권 대출이 불가능한 청년들에게 접근해 공인인증서와 OTP를 갈취한 뒤, 대포통장으로 악용하는 '작업 대출'이 성행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 가담자가 되어 형사 처벌의 위험에 직면한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매개로 한 '팀 미션 부업 사기' 역시 정교한 심리전으로 진화했다. 소액의 알바비를 미끼로 단체 대화방에 유인한 뒤, 조직적인 바람잡이들을 동원해 고액의 포인트를 충전하도록 유도하고, 최종 출금 단계에서 세금이나 보증금을 핑계로 추가 자금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건실한 부동산 업체를 사칭해 건물 사진 촬영 알바를 시킨 후, 자연스럽게 서류 봉투를 배달하게 만들어 청년들을 보이스피싱이나 마약의 '현금 수거책(던지기 수법)'으로 전락시키는 악질적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산 형성의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들이 선택한 주식·코인 등의 '빚투(B2)' 역시 사기의 덫으로 귀결된다. 최근 도산 절차를 밟는 청년층의 상당수는 단순 투자 실패가 아닌 '기획형 리딩방 사기'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유명 금융인이나 경제 유튜버의 얼굴을 딥페이크(AI) 기술로 정교하게 합성한 가짜 광고에 속아 자체 제작된 조작 프로그램에 돈을 입금한다. 화면상으로는 수억 원의 가상 수익이 찍히지만, 정작 인출을 시도하면 해외 거래소 소득세 등 감당할 수 없는 추가 송금을 요구받으며 파국을 맞이한다.
분양권 시장의 가스라이팅과 슈레딩거의 고양이
실물 자산 시장에서 가장 폭발력이 큰 시한폭탄은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지방 아파트 등 수익형 부동산과 분양권 시장에 숨어 있다. 과거 부동산 과열기에 자행된 분양 대행사들의 기만적인 마케팅이 금리 인상기라는 파도를 맞아 거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시 분양 현장에서는 "계약금 10%만 있으면 중도금과 잔금은 전액 대출로 전환되니, 단기 전매로 시세 차익을 보거나 높은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감언이설이 횡행했다. 수분양자가 한 채를 계약하면 상담사들은 고도의 심리적 압박과 마케팅 스킬을 동원했다. "한 채의 임대차익으로는 의미가 없으니, 서너 채나 수십 개 호실을 통으로 묶어야 대형 병원이나 학원 같은 우량 임차인을 맞출 수 있다"며 자산 기반이 취약한 이들에게 다량의 분양권을 떠넘겼다.
그러나 금리가 예측 범위를 벗어나 급등하면서 모든 환상은 깨졌다. 중도금 이자가 연체되고 수분양자의 신용에 빨간불이 켜지자, 제1·2금융권은 일제히 잔금 대출 승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수분양자들은 계약을 해제할 수도,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가져올 수도 없는 이른바 '슈레딩거의 고양이' 같은 기이한 늪에 빠지게 되었다. 현장은 이미 공실로 넘쳐나고 프리미엄은커녕 '마이너스 피'가 분양가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져도 매수자는 종적을 감췄다. 결국 계약금은 고스란히 날아가고 물건이 경매 시장에서 반값에 낙찰되고 나면, 수분양자에게는 실물 자산은 고스란히 사라진 채 수억 원대의 고리 이자 채무만 청구서로 남게 된다.
(슈레딩거의 고양이: 내 집인 것도 같고 내 집이 아닌 것도 같은, 득을 본 상태인지 완전히 망한 상태인지 뚜껑을 열어 정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진퇴양난의 불확실한 상황)
죽지도 못하는 좀비 기업과 폐허가 된 공단
더 큰 비극은 이 부동산 잔금 대란의 여파가 내수 실물 경제의 버팀목인 중소기업들까지 연쇄적으로 침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묵묵히 제조업을 영위하며 이윤을 내던 우량 중소기업들조차 사옥 마련을 위해 지식산업센터를 다량 분양받았다가, 잔금 대출 제한에 걸려 전사적인 연체 늪에 빠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에 묶인 자금 압박은 거래처 대금 지급 불능과 운영 자금 경색으로 이어져 기업의 숨통을 조인다.
더욱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은 현재 수많은 한계 기업들이 '파산조차 하지 못하는 좀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계약 불이행이나 채무 불이행에 대해 채권자들이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남발하는 경향이 짙다. 임금 미지급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 등 대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법적 공포가 너무 크다 보니, 많은 경영자가 정상적인 법정 관리나 파산 절차를 밟지 못하고 사업을 질질 끌며 사태를 악화시킨다.
여기에 제도적 모순이 기름을 붓는다. 법인 파산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면 변호사 선임비와 법원 예납금 등 최소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진짜 한계에 다다라 통장 잔고가 '0원'인 한계 기업들은 파산 비용이 없어서 파산을 신청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 결국 이들 기업은 법적 정리 없이 직권 폐업만 된 채 대포통장이나 유령회사의 통로로 전락하는 등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제조 업종의 심장부라 불리는 인천 남동공단 등 주요 산업단지를 가보면, 공실률이 불과 수년 전보다 몇 배 이상 급증한 폐허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대출 연장과 만기 유예로 아슬아슬하게 버텨온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유예된 파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실패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치안이 산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파산과 회생을 두고 '도덕적 해이'라 비난하거나, 성실하게 빚을 갚는 이들과의 형평성을 논하며 날 선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서 '이자'라는 재화의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대출을 통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리는 근거는 단순히 돈을 빌려준 대가가 아니라, 차주가 돈을 갚지 못할 확률, 즉 '리스크 프리미엄'을 금융 비용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 장사를 하는 채권자는 차주의 부도 위험을 함께 분담하는 것이 시장 원리에 부합한다.
낙오된 채무자를 끝까지 추심하여 신용불량자로 낙인찍고 사회적 지하 세계로 내쫓는 것은 공동체 전체에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들을 제도적으로 구제해 빠르게 가계 및 기업 활동을 재개하도록 돕고, 다시 세금을 내는 정상적인 생산 주체로 복귀시키는 것이 국가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천살의 한마디]
산업 구조의 거대한 전환기나 예측 불가능한 경기 악화 속에서 개인이나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파고를 넘기란 불가능하다. 도산 제도는 단순한 부채 탕감이 아니라, 사회적 자살률을 낮추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사회안전망'이다.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사회는 결국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정체된 사회로 침전할 뿐이다. 붕괴해 가는 실물 경제의 경고등이 켜진 지금,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적 보완과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부동산 전문 칼럼니스트 임정빈
임정빈(천살) 칼럼니스트는 부동산 경매 실무 분석 전문가이자 천살의 부동산 경매 대표로 활동 하고 있다. 5년의 병상 생활 동안 갈고닦은 정밀한 리스크 분석법을 바탕으로 초보 투자자들을 위한 실무 가이드를 제공하며, 장애인 복지와 부동산 기술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다.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