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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40] 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미장센의 성취와 서정의 과제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40

쥘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는 괴테의 원전이 지닌 독일적 숭고함을 프랑스 특유의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선율로 재해석한 낭만주의 오페라의 결정판이다. 이 작품은 장중한 극적 구조보다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드라마'로서의 성격이 짙다. 마스네는 발화하지 못한 인물 내면의 비명을 관현악의 색채를 통해 형상화하며, 단순한 비극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과 열망을 그렸다.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영화감독 출신의 박종원 감독이 연출한 이번 무대는 오페라를 '보는 예술'로서 새롭게 조명하려 한 영화적 미장센의 구현이 돋보였다. 영화 감독 특유의 프레임 구성은 무대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의 심리를 정밀하게 투사하는 거대한 심리적 공간으로 전환했다. 볼프강 폰 주벡의 무대 디자인은 고전적인 우아함과 현대적 공간 효율성을 결합하여, 1막의 전원적인 평화부터 4막 베르테르의 서재에 이르기까지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정교하게 구현했다.

남녀 주인공과 동반하여 언어로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내밀한 고통과 억눌린 동경을 무언의 동작으로 객석에 선명하게 전달한 무용수의 춤사위는 작품의 심리적 층위를 한층 깊게 만들었다. 아울러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순간에도 특정 인물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기보다 무대 전체를 조망하게 한 조명 활용법은 관객에게 영화적 몰입감을 선사하는 세련된 선택이었다.

오페라 베르테르(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마스네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바그너풍의 육중한 구조와는 결을 달리하며 인물의 세밀한 심리적 파동을 포착해 내는 섬세한 질감과 명징한 색채감이 생명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관현악의 텍스처를 얼마나 입체적으로 유지하며 악보에 새겨진 섬세한 뉘앙스를 정교하게 재현해 내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현악의 절제된 약음 처리를 가수의 선율적 호흡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일치시키느냐가 이 작품의 미학을 완성하는 핵심이다.

하지만 홍석원이 이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밀도가 다소 높고 경직된 질감을 노출했다. 무도회 장면이나 주요 이중창에서 오케스트라는 가수의 섬세한 프레이징을 유연하게 수용하기보다, 극적 긴장감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인물의 내면 심리를 투영해야 할 목관 악기들 역시 정교한 앙상블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작품이 지향하는 비극적 숭고미를 온전히 구현해 내는 데 다소간의 거리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점은 성악가들이 더욱 유연하고 입체적인 해석을 펼치는데 충분한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오페라 베르테르_테너 김요한(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테너 김요한(사진_국립오페라단)

베르테르 역의 테너 김요한은 영웅적 기개가 느껴지는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했으나, 이 작품의 본질인 세밀한 서정적 결을 살려내는 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작품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에서 보여준 직선적인 가창 처리는, 약음을 통한 내밀한 심리 묘사보다는 성악적 에너지 부각에 무게중심이 치중된 느낌을 주었다. 지휘자가 관현악의 음영을 보다 세밀하게 조절해 테너가 감추어진 서정성을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음악적 여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안타까운 대목이다.

샤를로트 역의 카리스 터커는 안정적인 중저음의 울림과 세련된 음색으로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지탱했다. 특히 3막 ‘편지 장면’에서 그녀가 보여준 절제된 감정 표현은 사회적 의무와 내밀한 갈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다만, 사랑에 대한 갈망이 오케스트라의 층위와 조금 더 긴밀하게 맞물렸다면, 그 비극적 함의가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김요한과 카리스 터커(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소프라노 홍혜인(사진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_소프라노 홍혜인(사진_국립오페라단)

이번 프로덕션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견은 소피 역의 소프라노 홍혜인이었다. 그는 단단하면서도 투명하게 빛나는 음색으로 자칫 침잠하기 쉬운 비극적 서사에 싱그러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홍혜인의 쾌활하고 안정적인 발성은 그 자체로 작품의 훌륭한 감초 역할을 수행했으며,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존재감을 증명해 냈다.

결론적으로 이번 프로덕션은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입었으나, 마스네가 악보 곳곳에 숨겨둔 ‘섬세한 폭발력’이 온전히 구현되지는 못했다. 비주얼의 세련미에 걸맞는 음악적 디테일이 조금 더 요구되었던 무대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오페라 베르테르(포스터_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베르테르(포스터_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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