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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9] 2026 교향악축제, 선율로 잇는 시대의 공명 ‘Connecting The Notes’

경계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한국 교향악의 미학적 궤적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9

4월 한 달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한국 클래식의 현재를 가장 밀도 있게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이었다. 23일간 이어진 대장정은 지역적 경계를 넘어 음악적 접점을 모색해 온 우리 오케스트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담아냈으며, 이는 올해로 38회를 맞이한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우리 교향악계에서 수행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올해의 부제인 ‘Connecting The Notes’는 단순한 선율의 이음을 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역의 한계를 관통하는 오케스트라 간의 유대를 상징한다. 전국 19개 국공립 교향악단이 저마다의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낸 가운데, 특히 스위스의 명문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참여는 축제의 외연을 확장하며 국제적 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_가보르 타카치 너지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_가보르 타카치 너지 ©예술의전당

현악사중주의 정밀함으로 확장된 관현악

7일 무대에 오른 가보르 타카치 너지와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CO)는 오케스트라가 도달할 수 있는 실내악적 응집력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타카치 너지는 포디움이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단원들과 수평적인 시선을 맞추며, 앙상블의 모든 디테일을 바이올리니스트의 감각으로 조율해 나갔다.

첫 곡인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에서 타카치 너지는 마치 열손가락이 모두 지휘봉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세하고 치밀한 지시를 쉴세없이 내리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원전연주를 연상케하는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급진적인 템포의 변화, 자유자재로 조절되는 볼륨, 독특한 프레이징 등 흥미로운 음악적 장치로 가득했다. 그가 평생을 몸담아 온 현악사중주의 방법론을 오케스트라라는 거대 유기체에 성공적으로 이식했음을 증명했다. 다양한 질감의 현 파트가 빚어낸 입체적인 음향과 숨 쉬는 듯 자연스러운 플루트, 그리고 포근한 바순 주자의 기량이 걸출했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예술의전당

이어지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에서는 라파우 블레하츠와 함께 지적인 실내악적 균형을 추구했다. 블레하츠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운 정교한 세공을 보여주면서도, 피아노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주고받는 합주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흥미로운 해석을 선보였다. 루바토의 절묘한 활용과 투명한 터치는 기존의 정형화된 베토벤 해석과는 또 다른 설득력을 지녔으나 마지막 악장에서는 비로소 베토벤다운 강력하고 명징한 사운드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앙코르로 들려준 쇼팽 곡에서 그의 음악적 정체성은 더욱 명확히 빛났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은 리듬의 본질적 생동감이 살아난 무대였다. 단원들은 지휘자의 비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광폭할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특히 2악장에서 들려준 저음현 파트의 깊이 있는 음색과 악단의 고요한 합주는 지휘자의 음악성과 악단의 저력을 보여줬다. 4악장에서 휘몰아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긴장감은 음악적 희열을 안겨주었다.

축제 분위기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것은 헝가리 출신 지휘자의 정체성이 담긴 세 곡의 앙코르였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헝가리 만세>에서 보여준 리듬의 생동감이 인상적이었다. 관객 친화적인 퍼포먼스와 제스처는 이번 교향악축제가 지향하는 '연결'의 의미를 가장 유쾌하게 증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춘천시립교향악단_송유진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춘천시립교향악단_송유진 ©예술의전당

지역 오케스트라가 증명한 가능성

축제 후반부, 괄목할 만큼 성장한 지역 교향악단들의 연주는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자신들만의 확고한 음악적 색채를 바탕으로 축제의 질적 수준을 견인하는 주체로 떠올랐다.

19일, 춘천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 송유진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7번>의 구조를 명확히 인식한 절제된 해석을 선보였다. 각 악장은 동기의 흐름과 형식적 균형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과도한 감정을 지양하는 절제된 해석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1악장에서는 핵심 동기의 제시와 전개가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며 구조적 윤곽을 분명히 했다. 다만 저음 현을 중심으로 한 음향의 밀도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면서 긴장의 축적이 다소 흐린 인상도 남겼다.

2악장은 안정된 앙상블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전개되었다. 현과 목관의 조화는 균형을 유지했으나, 기능적인 완성도가 보다 충실했다면 서정의 깊이가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3악장에서는 리듬의 정확성과 앙상블의 정돈이 돋보였다. 피날레는 전체 구조 속에서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과도한 과장 없이 일관된 흐름을 유지했다. 다만 종결부의 음악적 귀결이 보다 선명했다면 했다. 앙코르로 들려준 우아한 차이콥스키 <세레나데>의 한 대목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공주시충남교향악단_정나라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공주시충남교향악단_정나라 ©예술의전당

21일, 공주시 충남교향악단이 선택한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정나라는 특유의 온화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적인 화성과 변박의 미로를 명료하게 정리해 나갔다. 2악장에서 파트별 수석들이 보여준 기량은 놀라웠다. 바순, 오보에, 클라리넷이 차례로 등장하며 빚어내는 정교한 앙상블은 악단의 역량이 국내 정상급임을 보여주었다.

4악장에서는 서정적인 선율과 풍자적인 대목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날카롭게 살려내며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압권은 5악장 피날레였다. 휘몰아치는 푸가토 전개 속에서도 정나라는 결코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며 찬란한 음향의 폭포를 만들어냈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울산시립교향악단_사샤 괴첼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울산시립교향악단_사샤 괴첼 ©예술의전당

23일간의 대장정은 울산시향과 지휘자 사샤 괴첼의 손끝에서 마무리되었다. 괴첼은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탁월한 통제력으로, R.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 악보 구석구석에 숨겨진 유머와 기묘한 화성들을 생생하게 살려내며 한 편의 입체적인 풍자극을 연상시키는 서사를 구축으나, 이를 구현해 낸 악단의 기량은 지휘자의 날카로운 해석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이날 공연의 정점이자 축제의 피날레인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에서도 괴첼은 색채감을 극대화하면서도 구조적 명료함을 잃지 않는 치밀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빌라 보르게제의 소나무’의 경쾌한 움직임부터 ‘카타콤의 소나무’의 신비로운 저음역 울림까지, 울산시향은 지휘자의 세밀한 요구를 성실히 뒤따르며 호흡을 맞췄다.

마지막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에서 금관 앙상블이 뿜어낸 포효는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는 음향적 장관을 연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지휘자가 설정한 해석적 층위에 비해 정교한 밸런스나 세부적인 기능적 완성도에서 다소간의 편차가 감지되기도 했다. 치밀한 설계가 오케스트라의 구현과 완전히 밀착되지 못한 대목은 일부 아쉬움으로 남으나,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로서의 상징성과 에너지만큼은 충분히 전달된 무대였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창원시립교향악단_협연 김서현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창원시립교향악단_협연 김서현 ©예술의전당

김서현, 거장의 기틀을 증명한 ‘발견’

이 축제의 진정한 묘미 가운데 하나로 차세대 거장으로 거듭날 솔리스트들을 소개하는 '등용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2026년 교향악축제 역시 김세준(비올라), 이유빈(첼로), 최하영(첼로), 임동민(바이올린) 등 화려한 라인업을 선보였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무대는 단연 창원시향과 김서현이 함께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티보르 바르가 콩쿠르 우승 이후 김서현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충분히 고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브람스는 신동의 기교만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교향악적 무게감'이라는 장벽을 지닌 곡이다. 김서현은 1악장 첫 화음부터 이 우려를 기대로 바꾸어 놓았다. 대개 화려한 선율미에 집중할 때, 김서현은 브람스 특유의 두터운 더블 스톱을 명징하게 짚어내며 구조적인 견고함을 우선시했다. 그녀의 소리는 콘서트홀 구석구석까지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2악장 아다지오에서 보여준 목관 악기들과의 대화는 그녀의 음악적 성숙도를 증명했다. 오보에의 전주를 이어받는 김서현의 바이올린은 과장된 감상주의를 덜어내고 담백한 서정성을 선택했다. 절제된 비브라토와 긴 호흡의 선율 처리는 브람스 내면의 고독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으며, 오케스트라의 질감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앙상블 감각은 노련했다. 마지막 3악장에서 리듬의 야성적인 추진력을 유지하면서도 음정의 정확도를 잃지 않는 치밀함은 그녀의 기량을 확인시켰다.

교향악축제의 순기능은 결국 이러한 '발견'에 있다. 이미 완성된 대가뿐만 아니라, 김서현처럼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젊은 음악가가 대형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거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관객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울산시립교향악단_사샤 괴첼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울산시립교향악단_사샤 괴첼 ©예술의전당

연결된 선율, 그 너머의 미래

올해의 교향악축제는 '디지털 스테이지'를 통한 실시간 중계와 야외 상영을 병행하며 클래식의 문턱을 한층 낮추었다. 이는 단순히 음악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많은 시민과 동시대의 감각을 공유하고 호흡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선율과 선율을 잇고,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며, 한국 교향악의 오늘을 증명한 이번 축제는 이제 다음 단계를 향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각 오케스트라가 보여준 비약적인 발전 위에, 이제는 각 단체만의 독창적인 사운드와 깊이 있는 해석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선율이 멈춘 자리에서 내년에는 또 어떤 음악적 탐험으로 우리를 안내할지,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2027년을 기다려 본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포스터 ©예술의전당
2026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_포스터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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