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발행인 칼럼] 고유가 위기 속 ‘넓은 선별’…추경 26조가 던진 정책 신호
정부가 26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꺼내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중동 전쟁발 고유가 대응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분명한 정책 방향 전환의 신호가 담겨 있다.
조용범 기획처 예산실장이 밝힌 것처럼 이번 추경은 약 0.2%포인트의 경제성장률 제고를 목표로 한다. 수치 자체는 크지 않지만, 지금의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수요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상태, 이른바 ‘GDP 갭’이 마이너스인 국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재정 투입은 과열이 아니라 ‘보완’에 가깝다. 정부가 물가 자극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단연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눈에 띄는 점은 대상 범위다. 소득 하위 70%, 즉 사실상 중산층까지 포함하는 구조다. 과거 재난지원금이 보편과 선별 사이에서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다면, 이번에는 ‘넓은 선별’이라는 절충안을 택한 셈이다.
이 구조는 정책적으로도 흥미롭다. 단순한 소득 기준이 아니라 지역과 취약성을 동시에 반영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감소지역 간 차등 지급은 단기 지원을 넘어 지역 균형이라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재정 정책이 점점 더 ‘정밀 타격’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년 정책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문제는 단순한 실업이 아니라 노동시장 이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대기업 연계형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취업지원과 창업 지원을 동시에 확대했다. 단기 일자리 공급이 아니라 ‘시장 복귀’를 유도하겠다는 접근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창업 지원의 경우,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생존율’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재정 투입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단기 부양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재원 구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번 추경은 국채 발행이 아닌 초과세수를 기반으로 한다. 동시에 일부는 국채 상환에 투입된다. 확장 재정을 쓰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관리하겠다는, 다소 이중적인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속도’인가, ‘건전성’인가. 정부는 두 가지를 모두 잡겠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추경의 본질은 위기 대응을 넘어 정책 기조의 변화에 있다. 전면적 보편 지원도, 엄격한 선별 지원도 아닌 ‘넓은 선별’ 전략. 그리고 단기 부양과 구조 개선을 동시에 겨냥한 복합 처방.
이러한 접근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향후 재정 정책의 표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보편과 선별 사이의 논쟁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조 원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책의 방향이다. 이번 추경은 단순한 예산 편성이 아니라, 한국 재정정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다.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칼럼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