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대한항공, 국제선·공항 라운지 동반 세계 3위…프리미엄 서비스 존재감

이태양 미술관 개관기념 공연 ‘소리로 터를 열다’

[시사매거진 채규진 기자] 지난 3월 27일, 오후 5시 경기도 시흥 첨단산업단지 한복판에서 열리는 오랜 사유의 빛과 전통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 반도체 장비를 제조하는 차가운 철의 숲, 그 건물 2층 아스라한 천장의 거대한 공간에 KOREA ART CENTER-이태양 미술관이 세워져 천년의 숨결을 품은 나전칠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태양 작가는 수천 년의 전통이 빚어낸 나전칠기 작업을 현대적 감성으로 매만지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가는 한국의 국가 지정 문화유산(국보) 제78호,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제1호인 고류지 목조 반가사유상이 품은 전통적인 미학과 세계적인 조각가 로댕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에 이르는 사유를 깊숙하게 헤아려 사유의 미학 시리즈 작품을 추구하였다. 이와 같은 작품성이 해외에서 인정되어 2024년 일본 도쿄도 도지사상을 수상하였으며, 2025년에는 일본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또한, 한국 민속 신앙의 상징인 장승과 솟대에서부터 유구한 역사를 품은 다양한 유산을 작품화한 ‘지킴의 미학’ 시리즈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바탕에서 한국문화의 바탕인 전통 판소리 다섯마당의 서사 작품에 주력하고 있는 깊은 의식의 작가이다.

이태양 작가에게 나전(螺鈿)은 재료이기 이전에 하나의 역사적 사유이다. 이는 억겁의 바다에서 침묵하던 전복과 소라의 속껍질을 얇게 오려서 무늬를 만들고 옻칠한 표면에 붙여 광택을 내는 기법인 나전칠기(螺鈿漆器)를 통하여 거친 표면에 숨겨진 찬란한 빛의 사유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수천 번의 연마를 반복하는 작품 과정은 사물의 본질을 투과한 빛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시선의 예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깊은 의식이 이제는 한국문화의 정수인 전통 소리의 형상화로 옮겨온 것이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살피게 되면서 자개로 쓴 대서사시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는 깊은 의식을 매만지는 작업이 놀라웠다.

이날 이태양 미술관 개관기념 축하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교수이며 (사) 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인 채수정 명창이 이끄는 채수정 소리단과 이일영 한국미술관장이 기획 연출한 “사유의 빛 - 소리로 터를 열다”라는 제목으로 열렸으며, 황량한 산업단지에 세워진 이 미술관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이들은 채수정 명창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통 소리의 산실 채수정 소리단이었다. 그 주역이 이태양 작가와 돈독한 우정을 쌓은 채수정 명창이라는 사실에서 필자도 공감했다.

이와 같은 인연 속에서 열린 개관기념 공연 ‘소리로 터를 열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의 소리로 빛나는 공연이었으며, 함수연 명창의 진행에 따라 첫 무대는 김태현 고수의 장단에 젊은 소리꾼 지명인과 이치현이 삶의 굴곡을 축원의 소리로 승화시키는 한국 영혼의 가장 오랜 기원의 소리 ‘비나리’였다. 이어진 함수연, 정상희, 심윤아의 액맥이타령은 액을 막는다는 뜻으로 타령의 흥겨운 장단에 복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살아 숨 쉬는 흥겨운 기원의 한마당이었다.

또한 특별한 무대가 있었다. 중국 칭다오에서 건너온 뮤지컬을 공부하는 재능이 넘치는 소년 최민유 군이 바이올린 선율로 영화 ‘여인의 향기’ 주제곡인 ‘간발의 차이로(Por Una Cabeza)’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연주했으며, 한국 전통 속에 이어진 연주는 국경이 없는 예술이 어떻게 서로의 영혼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어 등장한 채수정 명창의 무대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은 공연의 꽃이었다. 고독하게 나전칠기 작업에 전념하는 벗 이태양 작가를 응원하는 소리와 빛으로 마주한 예술적 만남은 실로 아름다웠다.

톱질 소리에 맞춰 박이 갈라지는 찰나, 명창의 소리는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객석으로 쏟아져 내렸다. 친구 이태양 작가의 터에 모인 이들을 자신의 박 속에서 쏟아진 보화처럼 귀하게 보듬는 명창의 몸짓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 울림은 시흥의 산업단지를 단숨에 풍요로운 사유의 바다로 바꾸어 놓았으며 진정한 예술은 결국 고독한 천착 끝에 만나는 진실한 인연에서 완성되는 것임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를 이어 지현아 예인의 가야금 병창이 품은 애틋한 호흡과 여섯 소리꾼(김다희, 함수연, 정상희, 심윤아, 전하영, 장예림)이 3성부로 빚어낸 국악 합창 ‘풍년가’는 이 터에 내릴 소중한 미래를 노래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하나의 울림으로 모여 공간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판소리 다섯 마당의 서사를 자개로 새롭게 매만져가는 이태양 작가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었다.

나아가 젊은 예인 이치현과 지명인이 마주 서서 쏟아낸 ‘적벽가’의 기개는 전율이었다. 전장의 긴박함을 뚫고 나가는 힘찬 소리는 멀어져 가는 전통을 견디며 꿋꿋하게 선 우리 시대 예인들의 자존심 같았다. 이어지는 이재득, 전하영, 장예림, 김다희의 태평가와 뱃노래는 삶이 스스로 흥을 찾는 오랜 지혜를 재현하며 모든 이의 어깨를 흔들게 하였다.

도서 기증
도서 기증

90분의 대장정을 갈무리한 것은 전 출연진의 합창으로 피어난 남도민요의 신명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사라져 함께 노래하고 신명의 춤을 추었다. 소리는 사람의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다시 자개의 영롱한 빛깔로 꽃피어 공간의 꿈이 되었다. 무대의 불은 꺼졌으나 예인들이 토해낸 그 뜨거운 여운은 천년의 시간을 견딜 나전칠기의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무늬 속에 박혀 영원한 숨을 쉴 것이라는 생각을 매만졌다. 나아가 이 터는 앞으로도 소중한 인연들이 모여 문화와 예술이라는 찬란한 서사를 써 내릴 공간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채규진 기자기자의 다른 기사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생활/문화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