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용우 환경칼럼] 부산 도심의 하늘을 숲으로 덮자
폭염시대, 그늘도 시민의 권리다
올여름도 폭염이다. 이제 더위는 계절의 불편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한낮의 아스팔트는 뜨겁다. 버스정류장에 잠시 서 있는 일도 고역이다. 폭염시대 도시에 필요한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해법은 무엇일까.
나무다. 그리고 그늘이다. 최근 세계 도시들이 주목하는 개념이 ‘숲 지붕(Tree Canopy)’이다. 나무의 잎과 가지가 도시의 하늘을 덮는 수관피복을 뜻한다.
우리는 그동안 녹지를 땅의 면적으로만 봤다. 공원과 숲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졌다. 그러나 시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걷는 길 위에 그늘이 얼마나 있느냐다. 공원 100㎡가 있어도 그늘이 없으면 뜨겁다. 반면 녹지로 잡히지 않는 도로라도 가로수가 하늘을 덮으면 시민에게는 훌륭한 도시숲이다. 이제 녹지를 땅에서 하늘로 넓혀야 한다. 뉴욕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현재 약 23%인 수관피복률을 2040년까지 3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 나무를 심는 것뿐 아니라 기존 큰 나무를 지키는 데도 힘을 쏟는다.
부산은 어떤가. 올봄 거리에서 ‘닭발 가로수’를 숱하게 봤다. 가지와 잎을 과도하게 잘라 줄기와 몇 개의 가지만 남은 나무다. 안전을 위한 가지치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폭염을 막아야 할 도시에서 그늘을 만드는 가지까지 무더기로 잘라내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늘을 없애고 다시 그늘막을 설치하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무는 장식물이 아니다. 살아 있는 냉방장치다. 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가로수가 있는 보행로는 없는 곳보다 기온이 평균 3℃ 낮다. 표면온도는 최대 10~25℃까지 차이가 난다. 미세먼지를 줄이고 탄소도 흡수한다.
숲 지붕은 건강의 문제이기도 하다. 폭염은 모두에게 오지만 위험은 같지 않다. 나무가 많은 동네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동네의 차이가 있다. 어린이와 노인이 많이 다니는 곳에 그늘이 없다면 폭염 취약성은 더 커진다. 그래서 숲 지붕은 기후정의다.
부산도 정책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그늘을 만들었는지를 보자. 먼저 부산 전역의 수관피복률을 조사하고 공개하자. 어느 지역에 나무가 많고, 어디에 그늘이 부족한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2040 부산 숲 지붕 30%’를 목표로 세우자.
기후취약지역부터 우선하자. 학교와 전통시장, 버스정류장, 지하철역처럼 시민의 발길이 많은 곳에 그늘을 연결하자. 이를 ‘그늘보행권’으로 도시계획에 반영하자.
무엇보다 기존의 큰 나무를 지켜야 한다. 오늘 심은 묘목이 당장 그늘을 만들 수는 없다. 수십 년 자란 큰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내는 숲 지붕은 어린 나무 수십 그루로도 쉽게 대신할 수 없다.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도 건강한 큰 나무를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콜롬비아 메데진은 도로를 따라 나무를 연결해 ‘녹색 회랑’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도시를 하나의 녹색 네트워크로 바꾼 것이다.
핵심은 나무 한 그루가 아니다. 연결된 그늘이다. 부산도 할 수 있다. 산과 바다, 하천을 가진 부산의 자연환경을 생활권의 숲과 연결하면 된다. 나무는 전기를 먹지 않는 냉방장치다. 한 번 잘 심고 키우면 수십 년 동안 시민을 지킨다. 그러니 이제 나무를 ‘관리해야 할 시설물’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자.
폭염시대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폭염경보가 아니다. 시민이 걸을 수 있는 그늘이다. 부산의 하늘을 숲으로 덮자. 나무를 심는 도시에서 숲을 키우는 도시로 바꾸자. 녹지의 면적을 세는 도시에서 시민의 그늘을 세는 도시로. 그렇게 부산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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