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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고택(古宅)의 시간을 해석하다

풍수 칼럼리스트 송달
풍수 칼럼리스트 송달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에 땅속에 뿌리를 내려 존재를 지킨다. 사람은 움직임으로 자연의 변화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차이는 산소와 집터의 형태에도 드러난다. 부동(不動)의 자리인 산소는 기운을 모아 머물게 해야 하므로 산세(山勢)가 팔처럼 감싸 안으며 솟은 형상을 이룬다. 반면 사람이 살아가는 집터는 움직임과 소통이 필요하기에 기운이 펼쳐지는 부챗살 같은 형상을 취한다.

집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고택이라 할지라도 자연물에 불과하다. 몇 해만 비워 두어도 잡초와 넝쿨이 집을 덮고 담장은 허물어진다. 건물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별장처럼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집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온기가 끊기면 음택(陰宅)과 양택(陽宅) 모두 처음의 생기를 잃어 간다. 결국 공간을 지키는 힘은 터와 함께 사람의 손길에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고택들은 수백 년 동안 같은 터를 지켜 왔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집을 보수하고 생활을 이어 온 덕분에 오늘날까지 전통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터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으며, 사람의 정성과 관리가 더해질 때 비로소 공간의 모습도 이어진다.

고택을 신축할 때는 집주인의 사주(四柱)와 터의 기운(氣運)을 고려하여 좌와 향을 정하고 집을 지었다. 세월이 흘러 집주인이 떠나고 후손이 관리하게 되면 처음의 조화가 약해질 수 있다. 오래된 고택들은 대부분 산이 바람을 막아 주고 물이 앞을 흐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터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전통 목조건축의 기술을 먼저 이야기하지만, 풍수는 그보다 먼저 터의 생기를 본다. 좋은 터 위에 세워진 집은 세월을 견디는 힘을 얻고, 사람이 살아가는 한 그 생기도 이어진다.

자연은 순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순환의 원칙을 버티어 내지 못한다. 길지(吉地)라 하여도 관리와 생기가 끊기면 외형만 유지될 뿐 세월 속에서 점차 쇠락해 간다. 사람도, 건물도 흥망성쇠 속에 살아간다. 다만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루가 밤과 낮으로 바뀌고, 한 해가 사계절로 순환하듯 세상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기운은 차면 기울고, 성(盛)하면 쇠(衰)하는 법이다. 모든 흥망성쇠는 음양(陰陽)의 변화와 굴신(屈伸)의 이치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자연의 근본 질서이며,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예전에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이 지나던 과객의 말을 듣고 어느 터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큰 부귀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운이 좋아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풍수는 그보다 먼저 터를 이야기한다. 부귀는 집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터가 품은 생기에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십승지(十勝地)도 이러한 풍수 사상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 후기 《정감록》에서는 전란과 재난을 피해 오래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삶의 터전으로 전하며, 풍수적으로는 장풍득수의 조건을 갖춘 길지(吉地)를 상징한다.

우리는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이 머무는 한자리의 가치를 잊고 산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는 감탄하면서도 바람 소리와 새소리, 고요한 자연이 전하는 기운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지쳐 돌아오는 곳은 결국 마음이 편안한 집이다.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감싸는 집,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안식처다.

고택이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까닭은 오래된 목재 때문만이 아니다. 좋은 터를 만나고, 사람의 정성이 깃들며, 자연의 순리에 따랐기 때문이다. 땅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다시 땅을 살린다. 산수(山水)의 조화와 사람의 덕(德)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터의 생기는 오래 머문다. 이것이 풍수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이며,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근본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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