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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달의 흑백풍수 칼럼] 명당(明堂)의 허락
풍수를 논(論) 해 온 동양과 물질문명을 이끌어 온 서양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는 물질을 바라보는 진화론적 출발의 선후(先後)에 있고, 다른 하나는 생기(生氣)를 이해하는 관점에 있다. 서양은 물질을 관찰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동양은 생기가 머무는 터와 인간의 조화에 집중하였다. 출발은 달랐지만 삶을 위한 길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풍수는 그 시작을 자연에 두고 있다.
사과나무를 한 마을에 심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고, 다른 마을에서는 말라죽기도 한다. 이를 어찌 나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생명이 머무는 자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치가 존재한다. 단순한 물질론은 생기를 바탕으로 한 물질의 이치(理致)를 넘어설 수 없다. 뿌리 없는 나무가 오래 살아남지 못하듯, 물질도 이치라는 뿌리를 가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좋은 터를 얻는 일에는 오랜 시간과 수고가 따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원하는 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종묘사직의 '사직(社稷)'이 일러주듯, 땅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생명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좋은 터와 인연을 맺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어렵고도 귀한 일이다. 이는 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정성, 그리고 인연이 함께할 때 이루어진다.
대부분은 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물건을 소개받고 감정평가를 거쳐 매입을 결정한다. 수십 곳을 둘러보아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터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친 사람은 "좋은 곳만 알려주면 바로 사겠다."라고 말한다. 좋은 터는 돈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과 이어질 인연이 먼저 허락되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명당을 얻는 길은 세 가지라 하였다. 훌륭한 지관을 만나거나, 스스로 공부하여 찾거나, 덕을 쌓아 자연스럽게 좋은 땅과 인연을 맺는 것이다. 자연을 움직이는 힘은 순수를 바탕으로 한 덕에서 비롯된다. 작은 욕심은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자연의 이치를 움직이는 일은 욕심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전답(田畓)의 기운을 살피면 집안의 기운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터를 가진 집안은 삶이 안정되고, 재물도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다. 동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땅을 의지하여 터전을 이룬다. 땅은 부귀의 뿌리가 되고 건강의 근본이 된다. 풍수는 집을 보는 학문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살피는 학문이다.
재물은 모으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 길지(吉地)를 얻고도 그 기운을 잃으면 복도 함께 흩어진다. 그 시작은 대부분 과시에서 비롯된다.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이 법이 되고, 자신의 판단이 자연의 이치를 앞선다고 믿기 시작하면 운은 서서히 등을 돌린다.
사람들은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달콤한 성공은 자연의 냉엄한 질서를 잊게 만든다.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흘러가 버린 뒤인 경우가 많다. 자연의 이치는 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쇠락의 길에 들어서면, 다시 일어서는 일은 처음 이루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눈을 돌리면 온통 땅이다. 이론으로는 좋은 자리를 선택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머물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조상의 묏자리도 금강산 정상보다 집 앞의 완만한 야산을 더 귀하게 여겼다. 천석꾼의 집터 또한 대부분 산 아래 전답 가까이에 자리하였다. 과일이 가지 끝에서 가장 잘 익듯, 사람 역시 생기가 머무는 자리에서 삶의 열매를 맺는다.
역대 왕조 역시 넓은 평야와 큰 물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도읍을 정하였다.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그 품 안에서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오늘날 집의 담장도 외부를 막기 위한 구조이면서 동시에 집안의 기운을 지키려는 인간의 오랜 본능이 담긴 결과인지도 모른다. 자연에는 이치가 있고, 논리가 있으며,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인간의 삶에 적용한 학문이 바로 풍수지리다.
얼핏 보면 인간이 땅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연이 인간을 품고 살아가게 한다. 나에게 이로우면 이치라 하고, 이롭지 않으면 미신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순하면 자연도 순하게 응답한다고 하였다. 명당은 자연이 허락한 사람에게 머문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된다.
좋은 터는 결국 좋은 사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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