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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만든 울림… 연극 ‘뼈의 기록’

세 배우가 그린 3인 3색 로비스, 같은 인물의 다른 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5월 10일까지

연극 뼈의기록_강기둥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극 뼈의기록_강기둥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지난 4월 4일 막을 올린 <뼈의 기록>은 개막 이후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워지는 공연”,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작품”이라는 관객 반응 속에 순항 중이다.

화려한 장치 대신 절제된 연출로 밀도를 끌어올린 이 작품은, 고요 속 긴장과 여운을 정교하게 직조하며 독특한 관극 경험을 만들어낸다.

연극 뼈의기록_정운선, 강기둥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극 뼈의기록_정운선, 강기둥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이번 공연의 핵심은 ‘절제의 미학’이다. 길고 낮은 박스 형태로 구성된 무대는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봇 ‘로비스’가 머무는 지하 영안실을 형상화한다. 이 공간은 배경을 넘어 기억이 축적되는 데이터 박스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무대가 지하로 사라지는 전환은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며 관객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음악과 조명 역시 감정을 과잉 전달하지 않는다. 선율보다 질감 중심의 음악은 안드로이드의 시선을 닮은 담담함을 유지하고, 조명과 영상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공연 전반에 차가운 공기를 유지한다. 그 위로 인물의 감정이 서서히 스며들며 묘한 온기를 만들어낸다.

연극 뼈의기록_강해진, 장석환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극 뼈의기록_강해진, 장석환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출을 맡은 장한새는 “이 작품의 핵심 정서는 ‘적막함’”이라며 “영안실이라는 공간의 차가움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원작자 천선란 역시 “소설에서 중요한 장면이 무대에서 확장된 감각으로 표현돼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관객의 호평을 끄는 장면은 ‘로비스’와 ‘모미’의 수어 대화다. 배우들은 수어 통역사의 지도를 받아 대사를 직접 수어로 구현했으며, 아름다움과 죽음,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 없이 풀어낸다. 천선란 작가가 “가장 소란한 고요”라 표현한 이 장면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한 집중을 이끌어내며 공연의 정점을 형성한다.

연극 뼈의기록_이현우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연극 뼈의기록_이현우 ©예술의전당, 할리퀸크리에이션즈㈜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로비스’ 역의 강기둥, 장석환, 이현우는 각기 다른 결의 해석으로 동일 인물에 새로운 결을 부여한다. 감정을 최소화한 분장과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세 배우는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각기 다른 ‘로비스’를 경험하게 한다.

‘모미’ 역의 정운선과 강해진 역시 눈에 띈다. 두 배우는 한 공연 안에서 다섯 개의 캐릭터를 넘나들며 빠른 전환 속에서도 인물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구축한다. 따뜻한 감정의 ‘모미’부터 절제된 ‘무영’, 그리고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인물들까지, 다층적인 연기로 극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뼈의 기록>은 소리보다 침묵, 과잉보다 절제를 선택한 작품이다.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더 깊은 몰입과 긴 여운을 남긴다. 가장 조용한 순간이 가장 크게 울리는 무대, 그 역설이 이 작품의 힘이다.

뼈의 기록(포스터_예술의전당)
뼈의 기록(포스터_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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