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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브라 마을, 할머니 엉덩이 섬라고?”... 지도 앱에 뜬 크로아티아의 충격적인 지명들

구글맵 검색하다 깜짝… "방귀 섬이 있다고?" '팬티 마을' 표지판, 매년 5번씩 도난당해

 

이탈리아를 마주한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의 지도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이탈리아를 마주한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의 지도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섬이 1244개나 되는 크로아티아에서는 커플, 가족 단위 요트 투어가 인기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섬이 1244개나 되는 크로아티아에서는 커플, 가족 단위 요트 투어가 인기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시사매거진 박재아 기자]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이탈리아와 마주 보고 있는 아드리아해. 이 투명한 바다 위에 1,244개 섬이 흩뿌려진 나라, 크로아티아가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인 근엄한 중세 도시 두브로브니크로 잘 알려진 이 나라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종종 구글 지도를 켜고 당황한다.
 

크로아티아 '할머니 엉덩이' 섬의 비밀… 지명에 새겨진 500년 삶의 흔적

아드리아해 한가운데 147개에 달하는 섬들로 이뤄진 코르나티 국립공원(Kornati National Park). 이 군도를 이루는 섬들 중 하나인 바비나 구지차(Babina Guzica)의 이름을 크로아티아어로 번역하면 '할머니 엉덩이'다.

'할머니 엉덩이'라는 뜻의 바비나 구지차 섬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할머니 엉덩이'라는 뜻의 바비나 구지차 섬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두브로브니크 인근에 위치한 가치체(Gaćice)라는 마을의 이름은 현대 크로아티아어로 '팬티'라는 뜻이다. 조금 더 내륙으로 들어가면 그루드냐크(Grudnjak), 즉 '브래지어' 마을이 나온다. 주민이 2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벨라 프르데자(Vela Prdeža), 즉 '큰 방귀' 섬도 있다.

'큰 방귀'라는 뜻의 벨라 프르데자(Vela Prdeža)섬 표지판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큰 방귀'라는 뜻의 벨라 프르데자(Vela Prdeža)섬 표지판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섬 모양 대로 이름 지은 게 잘못인가요?

크로아티아 언어학 연구소의 지명학 권위자 도마고이 비도비치(Domagoj Vidović) 박사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지명들은 섬 모양이나 지형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어로 읽으면 웃기지만, 원래 의미는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 '그루드냐크'는 고대 슬라브어 '그루다(Gruda)'에서 왔다. '흙덩이' 또는 '비옥한 땅'을 뜻한다. 수백 년 전 농부들이 기름진 땅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붙인 이름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변해, 현대어 '브래지어'와 비슷하게 들린 것이다.
'가치체'도 마찬가지다. 늪지대 제방을 뜻하는 고어 '갓(Gat)'이 어원이다. 물길을 막고 길을 낸 곳이다. 조상들은 땅의 쓰임새를 이름에 담았다. 언어학에서는 이를 '지형유래지명(toponymy of topographic origin)'이라 부른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민망하지만 바비나 구지차 섬 모양을 보면 수긍이 간다. 하늘에서 보면 둥글고 가운데가 갈라져 있다. '방귀 섬'인 벨라 프르데자는 섬에 뚫린 바위 틈으로 바람이 통과할 때 소리가 나는데, 정말 방귀 소리 같기도 하다.
자다르 대학교의 베드란 스크라치치(Vedran Skračić) 교수는 2011년 논문에서 "이 지역 지명의 80% 이상이 지형·형태적 특징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마을 이름 놀렸다가 봉변

자고리예(Zagorje) 지역 슈피치코비나(Špičkovina) 마을은 크로아티아어의 '슈피치카(špička, 여성 성기)’와 'vukojebina(개똥밭, 시골벽지)’와 발음이 비슷해 자주 농담거리가 된다.

Vukojebina는 '정처없는(the middle of nowhere) 곳이라는 의미다. 직역하면 늑대가 사랑을 나누는 곳(a place where wolves go to make love)이라는 뜻도 있단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Vukojebina는 '정처없는(the middle of nowhere) 곳이라는 의미다. 직역하면 늑대가 사랑을 나누는 곳(a place where wolves go to make love)이라는 뜻도 있단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조란 밀라노비치(Zoran Milanović) 현 대통령이 2013년 과거 총리 시절 ”우리는 크로아티아가 '슈피치코비나(Špičkovina)'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Nećemo dopustiti da Hrvatska bude Špičkovina).”
라며 연설 중에 이 마을의 이름을 언급했다가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했다.
언어학자들은 "슈피치코비나는 비속어와 관계없이 '슈피차크(Špičak, 뾰족한 산봉우리)'라는 지형에서 유래했거나 중세 귀족 가문의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며, 어원에 무지한 정치인의 가벼운 입을 꼬집었다.

재밋는 지명이 많은 크로아티아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재밋는 지명이 많은 크로아티아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도로 표지판 도둑과의 전쟁

가치체에서는 마을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훔쳐가는 관광객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표지판 도난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만 5번이나 새로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1980년 코르나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지명 변경 논의를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2013년 유럽연합 가입 과정에서도 "세련되게 고치자"는 의견이 일부 있었으나 주민들이 반대했다.

가치체 표지판은 여행자들의 인기(?) 도난 물품이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가치체 표지판은 여행자들의 인기(?) 도난 물품이다. (출처_크로아티아관광청/CNTB)
가치체(Gaćice)를 검색한 결과 (출처_구글)
가치체(Gaćice)를 검색한 결과 (출처_구글)

독특한 지명, 관광 자원으로

현지 유명 맥주 브랜드 오주이슈코(Ožujsko)는 크로아티아의 독특한 전통과 자부심을 강조하는 광고 캠페인을 펼쳐 왔다. 2019년 '우리는 여기 남는다(Ostajemo di smo)'편에서는 7세기 크로아티아인들의 정착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고, 최근에는 '위대해지려면 작은 일을 하라'는 메시지로 일상 속 친절과 배려를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늪지대에 길을 낸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흙을 일군 농부들, 바람 소리에 이름을 붙인 어부들의 기록"이라며 "이 지명들은 크로아티아인들이 땅과 함께 살아온 500년 역사의 증거"라고 입을 모은다.

 

크로아티아인들의 정착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맥주 브랜드 오주이슈코의 광고

민망해도 지우지 않는 역사

서울 광화문 근처에도 과거 '똥골', '개미마을' 같은 지명이 있었지만, 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세련된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는 다르다. 관광객이 웃든 말든, 이름이 좀 민망하든 말든, 조상들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둔다.
오히려 이 독특한 지명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며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웃기려고 지은 이름이 500년 뒤 관광 자원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지도 위에 새겨진 웃음. 그것은 섬 모양을 보고 '할머니 엉덩이'라 부른 달마티아 어부들의 솔직함이고, 세월이 흘러도 바꾸지 않는 크로아티아인들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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