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묻기 시작했다, 인간은 무엇인가”…서울서 던져진 ‘풍류철학’이라는 질문
미국 독립 250주년 같은 날, 문명 전환기 짚은 출판기념회… ‘테크네트로피·호모 메리투스’ 제시
[시사매거진 조대웅 기자]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가 예상 밖의 화두를 던졌다. 단순한 신간 소개 자리가 아니라, AI와 로봇이 일상이 된 시대에 인간을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를 묻는 자리였다.
지난 7월 4일 서울에서 열린 고리들 작가의 출판기념회. 같은 날 미국에서는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졌고, 중동에서는 긴장이 고조된 집회가 이어졌다. 서로 다른 문명의 장면이 교차하던 날, 이곳에서는 ‘미래 문명’을 둘러싼 또 다른 논의가 시작됐다.
이날 행사에서 고리들 작가는 신간 ‘화가의 인문학’과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을 소개하며, 세 가지 개념을 꺼내 들었다. ‘풍류철학’, ‘테크네트로피’, 그리고 ‘호모 메리투스’. 낯설지만, 지금 시대를 관통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청중의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눈길을 끈 건 ‘풍류철학’이다. 전통 사상으로만 여겨지던 ‘풍류’를 AI 시대의 해석 틀로 끌어올리겠다는 주장이다. 고리들 작가는 “지금은 기술, 생태, 인간의 문제가 동시에 겹치는 전환기”라며 “풍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앞으로를 읽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국가석학 김일권 박사의 강연도 이어졌다.
그는 풍류도의 개념과 함께 ‘풍류요세’와 ‘화랑오덕’을 설명하며, 한국 고유 사상이 지닌 확장 가능성을 짚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행사 동안 40여 명의 참석자들이 자리를 지킨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번 행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고리들 작가가 제시한 개념들이 이미 해외 언론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류철학’과 ‘테크네트로피’ 관련 내용은 AP통신을 포함한 글로벌 매체에 보도되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나타나는 흐름을 보였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호모 메리투스’다. 인간을 ‘지혜로운 존재’(호모 사피엔스), ‘도구를 만드는 존재’(호모 파베르), ‘놀이하는 존재’(호모 루덴스)로 정의해온 흐름을 넘어, 이제는 ‘보람을 추구하는 존재’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경에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환경이 있다. AI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로봇이 생산과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이 더 이상 ‘일하는 존재’나 ‘생각하는 존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고리들 작가는 “AI가 사유하고 로봇이 노동하는 시대라면, 인간은 결국 ‘왜 살아가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며 “보람과 의미를 중심에 둔 인간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제시된 또 하나의 개념 ‘테크네트로피’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술 발전을 단순한 효율 경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균형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출판기념회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오히려 작은 포럼에 가까웠다.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고, 일부 참석자들은 “익숙한 개념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명 전환기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시대. 이날 서울에서 던져진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제안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에 대한 예고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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